고객을 팬으로 만드는 찰나,
진실의 순간(MOT)

글. 정성연

미국 보스턴 Fisher College 마케팅학과 조교수. 브랜딩 전문 컨설팅 ‘브랜닷츠’ 대표. 브랜딩 케이스 발굴 및 연구, 컨설팅을 진행한다.

고객 경험 자체가 곧 상품이자 마케팅이 되는 시대, 고객이 브랜드와 만나는 접점에서 매력을 느껴야 고객을 팬으로 만들 수 있다. 고객이 회사나 제품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15초 내외의 짧은 순간을 말하는 진실의 순간(MOT). 진실의 순간이 중요한 이유와 성공 사례를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우리 프로스포츠에 ‘진실의 순간’을 만들어 고객 감동을 일으킬 수 있을지 고민해 본다.

진실의 순간은 무엇인가?

마케팅에서 진실의 순간(MOT; Moments of Truth)은 고객이 브랜드를 경험하는 직·간접적인 모든 접점의 순간을 의미한다. 1984년 스웨덴 마케팅 학자 리차드 노먼이 서비스경영 문헌에서 최초로 언급한 이래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제품 및 서비스를 구매하고 경험하는 고객 여정의 과정과 단계가 복잡해진 만큼 그 접점의 수가 늘었고, 늘어난 접점의 수만큼 브랜드에서 고려해야 하는 진실의 순간도 세분화됐다. 이 진실의 순간들은 고객의사결정 프로세스의 흐름을 따른다.

다양한 고객과의 접점에서 고객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에 따라 그 브랜드에 대한 인식과 만족도가 달라지며, 이는 브랜드의 성패와 연결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객 감동 실현을 위해서는 고객 여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섬세한 고객 경험 디자인이 필수적이다.

고객 경험만큼 중요한 건 직원 경험

만족스러운 고객 경험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기업 내부 고객인 직원의 여정 및 경험에 대한 설계도 중요하다. 이는 외부 고객에게 브랜드를 대표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가 바로 직원들이기 때문이다. 직원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어 불편함이나 지연이 발생하면, 이는 고스란히 제품을 구입하는 고객 경험에도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고객 감동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고객 경험(CX; Customer Experience)과 직원 경험(EX; Employee Experience)을 모두 고려해 디자인해야 한다.

스웨덴 마케팅 학자 리차드 노먼

고객이 브랜드를 경험하는 직·간접적인 모든 접점의 순간을 의미하는 진실의 순간.
고객 여정이 복잡해진 만큼 진실의 순간도 세분화됐다.

PWC의 조사에 따르면 우수한 CX·EX 디자인을 위해 투자하고 설계한 기업은 그렇지 않은 곳에 비해 최대 16% 높은 가격 프리미엄과 고객 충성도를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또한 MIT 연구진은 EX가 기업의 사업 성과를 예측한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EX에 투자한 상위 25%의 기업이 하위 25%의 기업보다 혁신 및 고객 만족도가 2배 이상 높았으며, 수익성이 25% 높았다고 한다.

진실의 순간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사례

스칸디나비아 항공사: 공급자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1981년 스칸디나비아 항공(SAS)의 사장으로 부임한 얀 칼슨은 진실의 순간을 경영에 접목해 괄목할 만한 경영성과를 이끌어냈다. 그는 고객 감동 서비스를 위해서는 고객 여정에 대한 이해, 주목표 고객과 그들의 고객 니즈에 대한 명확한 파악, 현장 직원들의 권한 부여가 필수적임을 간파했다. 고객 여정을 꼼꼼히 살펴보며 한 명의 승객이 비행기를 타기까지 경험하는 접점들을 고객 감동의 기회로 이끄는 중요한 진실의 순간이라고 판단했다. 아무리 좋은 서비스라도 그들의 주목표 고객인 비즈니스 고객의 니즈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과감히 없앴다.

또한 현장 직원들에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책임과 권한을 부여해 고객의 문제가 즉시 해결될 수 있도록 독려했다. 이를 위해 조직 구조 개편, 공정한 성과 평가 및 보상 시스템 구축, 직원들과 비전 공유 및 내재화, 서비스 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SAS는 1년 만에 흑자 전환했으며 3년 만에 비즈니스 고객이 선호하는 글로벌 수준의 항공사로 성장했다. 이는 당시 공급자 중심이었던 항공 산업에 고객 중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의 경험을 담은 책 <진실의 순간 (Moments of Truth), 1987>은 현재까지도 비즈니스 필독서로 거론된다.

스칸디나비아 항공의 전 사장 얀 칼슨이 쓴 <진실의 순간>

GE 헬스케어의 어드벤처 시리즈: 공감을 바탕으로 두려움을 즐거움으로

CT, X-RAY, MRI 등을 이용한 진단 영상 절차는 정확한 진단을 위한 필수 단계지만, 환자에게는 불쾌한 경험이 될 수 있다. 특히 소아 환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GE 헬스케어의 산업 디자이너 더그 디에츠는 이런 불쾌하고 두려운 경험을 즐거운 모험으로 바꾸기 위해 고객 여정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디에츠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자신이 디자인한 진단 영상 장치를 보니 구멍이 있는 거대한 벽돌과 같이 보였다고 한다. 이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진단 영상 장치를 디자인하기 위해 아이들을 관찰하고 공감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그 결과, 단순한 기계 디자인에서 탈피해 아이들을 위한 진단 공간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산호 도시, 해적 섬, 캠프장, 우주 여행, 사파리 등의 다양한 주제로 기계와 공간이 만들어졌다.

GE는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주제로 공간을 만들었다. © GE Healthcare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아이들이 병원에 도착해서 검사를 끝내고 집에 가기 전까지의 모든 여정을 세분화하고 그 접점들을 세심하게 설계했다. 대기실에서 아이들은 모험에 앞선 준비를 한다. 모험에 대한 설명이 된 컬러링북과 테마별 모자 등의 소품이 지급된다. 검사실로 이동하면서 모험에 대한 스토리텔링으로 기대감을 높인다. 검사실에 입장해서는 검사 시작 전 아이들이 검사실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고 놀이기구를 타는 것과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검사 후에는 모험을 성공적으로 마쳤음에 대한 칭찬과 함께 완료 종이 브로치가 지급된다. 이로 인해 환자 만족도 점수는 90% 높아졌고, 검사에 대한 두려움이 감소했다. 이들 중 일부는 다음 날 다시 와도 되는지를 물어보기도 했다. 아이들이 검사 중에 두려움에 몸부림치지 않아 의사가 재판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마취과 의사의 필요성이 줄어들어 병원의 재정적인 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졌다.

베스트 바이: 직원 경험에도 관심을

베스트 바이는 고객 경험 만족에 대한 해답을 만족스러운 직원 경험에서 찾았다. 2014년부터 리테일 이용자 경험 개선 및 효과적인 직원 교육 시스템에 투자했다. 리테일 경험의 초점을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에게 한정 짓지 않고 직원 경험까지 확대했다.

직원의 업무상 고충을 이해하기 위해 직원 여정 지도를 그려본 결과,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는 부분에 시간과 노력을 빼앗기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로 인해 결제시간 지연이 발생하고 고객 대기 시간 증가로 인한 고객 불만 상승으로 이어졌다. 직원들에게 업무처리가 늦다고 핀잔을 주거나 닦달하는 대신 직원들의 경험을 개선하는 데에 집중했다. 그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을 개선하고, 보다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교육을 병행했다.

그 결과, 직원들이 컴퓨터 앞에서 결제 시스템에 소비하는 시간이 반으로 줄었고, 교육에 투자하는 시간 역시 반으로 줄었다. 직원 불만 역시 감소해 직원 유지율이 향상됐고, 직원들은 남는 시간에 고객 응대에 집중할 수 있어 긍정적인 고객 경험과 만족도 상승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 BEST BUY

프로스포츠의 성공적인 고객 경험 디자인을 위한 팁

무형의 경험을 판매하는 산업에서는 진실의 순간에 대한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 희열, 함께 응원하는 분위기, 추억 등 무형의 경험을 판매하는 프로스포츠가 고객 감동 경험을 위해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앞서 다룬 사례와 연결 지어 다음의 세 가지를 강조하고자 한다.

#1 새로운 관점으로 관습 타파

변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관습이다. 예전에 했던 것을 답습하는 것만큼 편안한 것이 없다. 그러나 이는 변화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도태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SAS가 항공업계의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했듯이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기회가 주어진다. 변화하는 고객의 취향과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 늘 촉각을 세우고 그에 부응할 수 있는, 더 나아가 트렌드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2 공감이 바탕이 되어야

GE 헬스케어의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고객 여정을 이해하고 고객 경험을 디자인하는 데에는 공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고객의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세심하게 개선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감과 세심한 노력은 고객 감동과 더불어 고객이 브랜드의 제품/서비스의 가치를 깨닫는 순간인 ‘아하 모먼트(Aha moment)’의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하 모먼트를 깨달은 고객은 그렇지 않은 고객에 비해 브랜드에 대한 호감과 충성도를 형성하게 된다.

#3 고객 경험을 만들어가는 직원에 대한 배려

“동료를 잘 돌보십시오. 그러면 그들이 고객을 잘 돌볼 것입니다”는 메리어트 호텔 그룹의 창업자 빌 메리어트의 경영철학이다. 무형의 서비스를 판매하는 기업의 성공에 있어 고객만큼 중요한 것이 직원이다. 고객의 불만족에 대한 해답을 직원의 업무 불편함에서 찾아 일석이조의 방법으로 해결한 베스트 바이처럼 고객 경험을 설계하기에 앞서 직원 경험을 살펴봐야 한다. 직원이 업무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해소되면 그들이 자발적으로 고객에 대한 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지지 않을까?

아무리 좋은 서비스라도 고객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고객 감동을 일으킬 수 없다. 고객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고객의 니즈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원하는 바를 제공하는 것이다. 성공적인 고객 경험을 디자인하는 데 있어서 변화하는 니즈에 따른 고객 여정과 경험을 검토하며 끊임없이 불편함을 개선하는 것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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