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A&M교수.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스포츠매니지먼트 박사 학위를 받은 스포츠 전문가. 스포츠 관중 심리를 중심으로 감성과학을 기반으로 한 융·복합연구를 수행 중이다.
영포티의 부상으로 그들이 누렸던 과거 문화가 현재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국의 프로스포츠 시장은 영포티를 겨냥해 향수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 레트로 마케팅과 더불어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마케팅 사례를 소개하고, 국내 프로스포츠 현장에 도입할 방안을 모색해 본다.
경제발전의 둔화로 인해 지나간 시대를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 혹은 향수가 시대의 보편적인 정서로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이에 따른 레트로 마케팅이 대대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선수와 팬들 모두 과거의 유니폼을 입는 스로우백 져지 데이(Throwback Jersey Day)는 마케터들의 필승 카드가 될 정도다.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레트로 유니폼 ©philadelphia eagles
스로우백 져지 데이 ©philadelphia eagles
과거의 즐거웠던 시절을 회상하게 하며, 스포츠 소비자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레트로 마케팅은 경기장 · 유니폼 · 로고 · 이벤트와 결합되어 다양하게 시행된다. 국내 프로스포츠 현장에도 레트로 마케팅이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지만, 그 규모와 파급력에 있어서는 해외 스포츠와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다.
스포츠 마케팅 학자들은 레트로 마케팅의 다섯 가지 실무 요소를 ▲이미지 ▲머천다이즈 ▲경기장 ▲경기 당일 프로모션 ▲홍보로 구분했다. 흥미로운 점은 스로우백 져지를 이미지 요소로 구분한 것이다. 이는 미국 시장에서 레트로 유니폼이 가지는 상징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과거 잘나가던 80년대 혹은 90년대 시절에 입던 유니폼을 선수들과 팬들이 입음으로써 과거의 향수를 함께 공유하는 문화적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 A Conceptual Framework for Retro Marketing in Sport. Sport Marketing Quarterly, 27(3)
NFL 탬파베이, 시애틀, 필라델피아 등의 스로우백 행사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행사가 영포티 팬들에게 매력적인 것은 당연해 보인다. 자연스럽게 과거의 영광과 추억을 되살리며 긍정적 감정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경험이 젊은 팬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과거의 영광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했지만 팀의 역사와 유산을 간접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소속감이 깊어지고 자부심과 충성도가 증가하게 된다. 우리나라 2002년 월드컵 신화의 유산이 이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효과와 비슷하지만, 이와 같은 전통과 유산이 지역 연고 기반의 프로스포츠 구단들마다 자리 잡은 것은 스포츠 학자로서 부러운 부분이다.
미국의 프로스포츠가 대도시들을 담당한다면, 미국의 대학 스포츠는 지방 스포츠를 담당한다. 이를 통해 풀뿌리 스포츠 참여나 스포츠 관람 문화에 있어서 지방이 소외되지 않는다. 대학 미식축구경기장이 10만 명을 넘게 수용하는 것은 예사고, 시합날이면 아침부터 바비큐 파티를 벌이는 테일게이팅(tailgating) 문화가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다.
가족 단위의 참여가 일반적인 대학 스포츠에서도 이미지를 형성하고 상징성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마케팅 과제다. 미국 캔자스 대학교의 스포츠팀 제이호크스(Jayhawks) 로고의 변천사는 향수 마케팅의 또 다른 예시가 될 수 있다. 제이호크스의 로고는 늘 투박하다. 하지만 이 투박한 로고는 이 지역 스포츠 팬들이 과거부터 가족과 함께 경기를 관람하던 향수를 떠올리게 만든다. 지속적으로 로고를 개선하지만 본질적 의미를 지키려 함에 따라 극단적인 변화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특히 팀의 색깔을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명에 가깝다.
투박한 로고를 유지하는 캔자스 제이호크스 ©Jayhawks
©Jayhawks
반면에 프로야구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는 뉴욕 양키스처럼 로고를 유지하는 팀들도 있다. 이러한 팀들도 예전의 상품 디자인이나 상징적 이벤트 광고 문구 등을 활용해서 레트로 마케팅에 참여하고 있다.
흔히 레전드로 불린 선수들은 은퇴 후에도 우상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지금의 영포티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선수는 바로 마이클 조던이다. 마이클 조던은 위성중계의 보편화와 발맞추어 NBA를 글로벌 콘텐츠로 자리 잡게 한 일등 공신이다. 80년대와 90년대를 살아온 영포티들은 어렸을 때 마이클 조던처럼 농구를 하고, 에어조던 신발을 사고, 게토레이와 맥도날드 등 미국 문화 소비에 열광했다.
특히 에어조던은 신발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현재는 나이키의 시장점유율이 압도적이지만, 에어조던 이전에는 컨버스의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았다. NBA의 규정을 어기면서 컬러 마케팅을 펼친 나이키는 에어조던2에서 나이키 로고를 없애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통해 조던 시리즈 탄생이라는 혁신을 불러왔다.
조던 시리즈는 마이클 조던 은퇴 후에도 계속됐으며, 예전에 출시된 조던 시리즈를 재생산해 판매하는 레트로 상품의 인기는 최신 시리즈에 비해 압도적이다. 조던과 에어포스1의 한정판들은 영포티와 젊은 세대 모두에게 인기다. 나이키는 스페셜 에디션을 한정판으로 발매하고, 이러한 신발들의 재판매 가격을 주시하며 시장 동향을 살핀다. 과거의 가치가 현재로 이어지는 레트로 상품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영포티에게 큰 영향을 미친 마이클 조던. 그가 신은 에어조던1의 인기는 최신 시리즈에 비해 압도적이다.
1985년 출시(왼쪽) 2015년 출시(오른쪽) ©나무위키
신발이 재화로서 시장을 형성한다면,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개인 브랜딩은 스포츠 문화의 담론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마이클 조던 세대 이후의 영포티 은퇴선수는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특징을 보인다. 샤킬 오닐이 대표적으로, 그는 은퇴 후에도 농구 전문가로서 방송 출연과 더불어 수많은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샤킬 오닐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3,340만이 넘는다. 많은 젊은이들이 샤킬 오닐을 통해 스포츠 비즈니스 및 생활 감각을 간접 경험한다.
은퇴 후에도 몸담았던 스포츠 분야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영포티 은퇴선수, 샤킬 오닐 ©나무위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 세계 순위를 보면 은퇴한 데이비드 베컴이 눈에 띈다. 팔로워 수가 무려 8,612만에 달하는 베컴은 최근 리오넬 메시의 영입으로 화제가 된 인터 마이애미 CF의 구단주이다. 미국 프로농구팀 샬럿 호네츠 구단주였던 마이클 조던과 비교해보면 소셜미디어에서의 소통이 훨씬 활발하다.
은퇴 후에도 몸담았던 스포츠 분야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영포티 은퇴선수, 데이비드 베컴 @davidbeckham
이렇듯 해외에서 주목받는 영포티 은퇴선수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은퇴 후에 커리어 전환도 성공적이지만 무엇보다 자기가 몸 바친 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연결고리를 놓지 않는 점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은퇴선수들과 출신 스포츠의 단절이 두드러진다. 우리나라 레전드의 재발견은 셀러브리티로 자리 잡거나, 미디어를 통해 재가공 되더라도 프로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는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다.
해외 영포티 은퇴선수는 은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해당 분야에 꾸준한 목소리를 내면서 자연스러운 레거시와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의 관심과 애정은 이들을 팔로우하는 젊은 세대의 관심으로 이어진다. 한국 프로스포츠가 영포티 은퇴선수들의 ‘운동선수’로서의 개인 브랜딩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NBACelebRow는 스포츠 팬들에게 친숙한 해시태그다. 영화배우부터 코미디언, 가수 등 수많은 셀러브리티들이 경기장 앞줄에서 찍힌 사진들은 이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공유된다. 특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든 나이대의 셀러브리티가 경기장을 찾는다. 이는 어릴 때부터 NBA를 동경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셀러브리티가 되고 나서도 농구의 ‘찐’팬으로서 경기장을 방문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NBA가 이들의 내적 동기를 불러올 만큼의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들 셀러브리티는 그들을 팔로우하는 팬들도 경기장으로 유입시키는 효과를 불러온다.
한국 프로스포츠의 경우에는 유명인사들이 단순히 시구 및 시축을 위해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다분히 외적 동기에 의한 참여이며, 당일 방문자가 반짝할 수는 있으나 지속적인 재방문으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하지만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 프로스포츠는 1982년 출범하여 상대적으로 역사적 전통이나 레거시를 논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반면에, 그 시절의 사회적 동력과 생동감을 온몸으로 기억하는 영포티들이 있다. 그들은 ‘찐’팬으로서 어린이 회원으로 가입한 경험이 있다. 여전히 그때 장만한 야구 점퍼를 소중히 간직하며 경기장에 나타난다.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과 함께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어린이에게 꿈을, 젊은이에게 정열을, 국민에게 건전한 여가 선용을!”이다. 수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경기장으로 데리고 왔다. 국내 프로스포츠 출범 이후 불었던 짧지만 강력한 역동성을 경험한 세대가 현재의 40~50대다. 즉, 영포티로 그때의 열정과 풍요로움을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세대다.
80년대의 부모 세대 코드가 ‘정성’이라면, 지금의 부모 세대, 즉 영포티의 코드는 ‘매력적인 문화의 소통’이다. 영포티의 라이프스타일이 이끄는 문화 트렌드가 그때의 감성과 풍요로움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함으로써 젊은층을 끌어당길 수 있다고 본다. 프로스포츠가 그 시절의 감성에 따른 이끌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NBACelebRow 캡처 화면 ©틱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