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포티 팬의 삶,
그 속에 프로스포츠

#1 삼성 라이온즈 팬 : 우승우 더워터멜론 대표

#2 두산 베어스 팬 : 천준아 <육퇴한 밤, 혼자 보는 영화> 작가

#3 포항 스틸러스 팬 : 김정규 아세아도 CMO

글. 박향아 사진. 전재천, 임근재

강한 개성과 경제력을 갖춘 덕에, 현재를 즐기며 자기관리와 자기계발에 힘쓰는 영포티. 프로스포츠 팬심을 숨기지 않아 왔던 영포티들을 직접 만나 이들이 현재를 즐기는 방법, 그리고 프로스포츠에 바라는 점을 들어본다.

40년 동안 조건 없이 좋아하는
단 하나의 브랜드, 삼성 라이온즈

#1 우승우 더워터멜론* 대표

* ‌더워터멜론은 ‘브랜드 민주화(Brand Initiative)’라는 비전을 가지고 브랜드를 만들고 키우고 알리는 브랜드 하우스. LG전자, 포르쉐, 비비고, 파르나스 등 누구나 알법한 굵직한 국내외 대기업들의 컨설팅과 캠페인은 물론 스몰 브랜드 개발 플랫폼 ‘아보카도’를 통해 1,500여 개가 넘는 브랜드와 함께 했다. 이밖에도 국내 최대 브랜드 커뮤니티인 ‘Be my B(비마이비)’와 1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마이비레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40년 차 삼성 라이온즈 팬

브랜드 생태계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고 있는 더워터멜론의 수장 우승우 대표가 조건 없는 애정을 쏟는 프로야구팀이 있다. 바로 삼성 라이온즈.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대구에 사는 사촌형을 따라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 회원이 됐으니, 이제 40년 차 팬이다. 직접 야구장에 가는 일은 1년에 3~4번으로 손에 꼽을 정도지만, 그날의 스코어와 하이라이트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LG 트윈스 팬인 공동대표와 전날 경기를 복기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우승우 대표의 오래된 루틴이다.

“보통 제품의 품질이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공간에서의 고객 경험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다른 브랜드로 갈아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제가 경험한 프로야구 팬들은 좀 달라요. 경기에 지는 날에는 당연히 욕하고 이겨도 욕을 하는데, 그래도 다음날이면 변함없이 야구 중계를 봐요. 물론 간혹 여러 이유로 팀을 갈아타는 분도 봤지만, 대부분이 ‘그럼에도’ 기대하며 내 팀을 응원하죠. 이렇게까지 무조건적일 수가 있을까? 참 신기합니다.” 그에게 프로야구는 ‘브랜드 공식’이 통하지 않는 ‘참 이상하고 신기한 브랜드’다.

영포티 우승우 대표의 라이프스타일

“저는 건강관리에 관심은 많은데, 현실은 잘 못 챙기는 편이죠. 또 창업자이기 때문에 ‘워라밸’이 없어요. 주말 밤이나 새벽에도 자유로울 수가 없거든요.”

트렌드 서적이나 언론에서 내린 영포티의 정의대로 살지는 않지만 그는 자신의 정의대로 영포티의 삶을 살고 있다. 즉, ‘젊은 사람들을 의식하고 젊게 살아야지’ 혹은 ‘남다르게 살아야지’라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해야 할 것과 좋아하는 것의 공존을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우승우 대표가 내린 영포티의 정의이다.

“열심히 쌓아온 자신의 전문성과 경험을 토대로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을 저는 영포티라고 생각합니다.”

우승우 대표의 삶도 이와 결을 같이 한다. 대표로서 60여 명의 직원을 책임지고 있는 만큼 ‘워라밸’보다는 일이 우선이다. 대신 여가 생활을 위한 투자에는 망설임이 없다.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지만,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 가족 여행을 떠나면 좋은 숙소와 맛있는 음식을 선택하고, 해외 출장이나 지방 강의 의뢰를 받게 되면,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을 내어 쉼과 새로운 경험을 축적한다.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해야 할 것과 좋아하는 것의 공존을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우승우 대표가 내린 영포티의 정의이다.

삼성 라이온즈는 자연스러운 일상

더워터멜론이 운영하는 브랜드 커뮤니티 ‘Be my B(비마이비)’의 네이밍에는 야구를 향한 우승우 대표의 팬심이 녹아 있다.

“공동대표와 함께 좋아하는 것이 브랜드 이외에 야구, 책, 맥주예요. 다 알파벳 B로 시작해서 ‘Be my B’로 이름을 정한 거죠. 공동대표는 LG 트윈스 팬인데, 한번은 둘이서 ‘얼마를 주면 팀을 바꿀 수 있겠냐?’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둘 다 ‘3억쯤이면 고민은 해보겠다’ 뭐 이런 얘기를 하면서 웃었네요.”

어릴 적 좋아하는 야구 선수 이름을 확인하려고 열심히 봤던 신문에서 한자를 익혔던 우 대표. 그에게 이만수 선수 사인볼은 여전히 소중한 추억이다. 두산그룹 신입사원 연수 시절, 작고하신 하일성 위원이 두산 베어스의 끈기와 투지에 관한 강연을 했을 때는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아주 잠깐이지만 퇴사를 고민하기도 했었다고. 이승엽 선수 은퇴식 현장에 함께한 것은 우승우 대표가 꼽는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오랜 기간 꾸준히 좋아했던 브랜드는 삼성 라이온즈 하나인 것 같다”는 우승우 대표는 “젊은 세대처럼 뜨겁고 요란하게 팬심을 표현하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 함께해서 삼성 라이온즈, 그리고 프로야구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팬심을 표현할 애정이 있기에

삼성 라이온즈 팬이자 영포티인 그는 직관을 하고 원정을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부족하지만, 오랜 시간 변하지 않은 팬심에 그 팬심을 표현하고, 투자할 수 있는 애정이 있다. 그런데 삼성 라이온즈의 경우 브랜드를 경험하고 소비할 수 있는 즐길 거리, 소비할 거리가 다양하지 않다며 아쉬움을 표한다.

“LG 트윈스의 유광점퍼처럼 팬심을 표현할 수 있는 상징적인 상품이나 일상과 연계된 굿즈들이 다양하게 마련되면 좋을 것 같아요. 단, 품질과 디자인 퀄리티가 높은 상품으로! 삼성 라이온즈가 크게 새겨진 2만 원짜리 흰 티도 좋지만, 괜찮은 브랜드와 콜라보를 한 15만 원짜리 티셔츠에, 팬들만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을 추가한 상품이면 더 좋겠죠?”

차별화되고 특별한 경험의 제공도 우승우 대표가 바라는 마케팅 포인트다. 예를 들자면, 팀의 레전드 선수와 함께하는 강연이나 훈련장 방문 등 구단을 경험하고 선수와 소통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다면, 시간과 비용을 지급할 의사가 충분하다는 것. 물론 프로야구 원년 팬 우승우 대표는 이런 것들이 없어도 야구가 개막하는 봄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시즌이 시작되면 욕하면서도 응원하는 이상하고도 신기한 일을 반복하겠지만 말이다.

‘패요’지만 15년차 팬이에요
덕질 역사의 정점, 두산 베어스

#2 천준아* <육퇴한 밤, 혼자 보는 영화> 작가

* 2000년에 방송작가 일을 시작했다. MBC <출발! 비디오여행>, SBS <접속 무비월드>, KBS <영화가 좋다> 등 공중파 3사 영화정보 프로그램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tbs FM <송재우의 스포츠 스포츠> 라디오 작가를 했고, 에세이 <육퇴한 밤, 혼자 보는 영화> 저자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직관 간 두산 찐팬

“좋으면 짝사랑부터 하고 보는 사람” 천준아 작가는 두산 베어스 팬인 남편의 아내이자 축구를 좋아하는 11살 아들의 엄마이다. 그 역시 15년 차 두산 베어스 팬. 아쉽게도 직관 승률 2할, ‘패요(패배 요정)’이다.

천준아 작가의 지난 세월을 보면 “덕질이 밥 먹여 주냐?”는 질문에 “밥도 먹여 주더라”라고 답할 만하다. 김건모의 열성팬으로 ‘방송국에 들어가면 그를 볼 수 있을까’ 싶어 방송작가의 길을 걷게 된 그녀. 스포츠 라디오 프로그램의 작가가 된 것도 ‘치고 달리는 공놀이’에 푹 빠진 방송작가가 있다는 소문이 방송국에 쫙 퍼진 덕분이다.

“덕후로 산 지 오래됐어요. 중학교 때는 마낙길 선수에게 반해 배구를 좋아했고, 이후에는 친구들 따라 자연스레 농구로 이어졌죠. 그러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경기를 보면서 ‘야구가 이렇게 재미있구나’를 느꼈고, 당시 라인업에 두루 포진해있던 두산 선수들을 따라 두산 베어스의 팬이 되었습니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다 보니, 자연스레 두산 베어스라는 팀이 가진 스토리에 눈길이 가고 마음이 향했다. 두산 베어스 김경문 감독의 등 번호 74번에는 ‘야구에는 행운(7)과 불운(4)이 공존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인터뷰도, ‘미라클 두산’이 써 내려간 무수히 많은 이야기도 덕후의 심장을 저격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직관을 갔다. 잠실구장 근처 신천에서 열리던 ‘별별 야구 모임’에도 꼬박꼬박 열심히 참석했다.

틀을 깨는 무한도전을 즐기는 영포티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열정으로 빈틈없이 삶을 채워온 천준아 작가. 그녀가 생각하는 영포티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도전’이다.

“편견, 고정관념, 선입견을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과 마음이 젊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수록 틀이 많아져요. 그 틀에서 벗어나기가 참 쉽지 않은데, 과감히 그 틀을 깨고 도전을 즐기는 40대를 영포티라고 하면 어떨까요?”

영포티를 표현하는 또 다른 단어가 ‘틀을 깨는 도전’이라면 천준아 작가는 누가 뭐래도 영포티의 대표주자다.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면서 남한산성 자락의 한적한 마을 불당리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버스가 80분에 한 대씩 오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마을’에 거주하기로 한 것은 오로지 남한산 초등학교가 있는 이 마을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다.

“산골짜기에 있는 작은 학교라서 학부모끼리 다 같이 그렇게 키우자고 약속을 했고 잘 지켜지고 있어요. 근처에 학원이 없으니 당연히 사교육도 없고, 아이들은 산과 계곡에서 신나게 뛰어놀죠. 흔히 말하는 미래 인재를 위한 교육법과 대치되는 것 같지만 중요한 것은 본질을 보는 것이라고 봐요. 야구선수들도 기본기가 탄탄해야 하듯 어린 아이에게 기본은 뛰놀면서 배우는 것들이라고 믿고 여기에 온 것도 도전이라고 봐도 되겠죠? 올해는 아들, 남편과 함께 마라톤을 시작했는데요. 처음이라 5km에 도전했는데 내년에는 10km에 도전하고 싶어요.

편견, 고정관념, 선입견을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과 마음이 젊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수록 틀이 많아져요.
그 틀에서 벗어나기가 참 쉽지 않은데,
과감히 그 틀을 깨고 도전을 즐기는 40대를
영포티라고 하면 어떨까요?

두산이 좋아서 친구 신혼여행까지

오랫동안 두산 베어스 덕후로 살아온 천준아 작가는 안다. 야구가 알면 알수록 얼마나 매력적인 스포츠인지를, 그리고 그 매력에 빠지면 절대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야구가 너무 좋아서 야구 관련 책도 많이 읽었어요. ‘더블플레이 성공률이 높은 팀은 투수력이 약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처럼, 내가 좋아하는 야구에 관해 하나둘 알아가는 재미가 컸어요.”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그래서 지난 시간 쌓인 통계는 미래를 예측하는 기준이 되기 마련이다. 천준아 작가는 2009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승리할 팀이 플레이오프에 100% 올라간다’는 그간의 통계를 통쾌하게 깨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가장 좋아하는 고영민 선수가 공이 빠지지 않아 글러브 채로 토스하던 순간도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2009년 WBC 한일전을 보기 위해 도쿄돔까지 갔어요. 절친한 친구가 결혼을 했는데 마침 친구 남편이 두산 베어스 팬인 거예요. 둘을 열심히 꼬셔서 도쿄돔으로 떠나는 신혼여행에 동행했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친구와 함께 열심히 대한민국을 응원했던 기억은 여전히 소중한 추억입니다.”

어린 아이와 함께 야구장을 갈 수 있다면

두산 베어스를 응원하면서 감동적인 순간은 정말 많았지만, 마케팅 분야로 시선을 옮겨보면 항상 아쉬웠다고.

”아이가 어릴 때 야구장에 너무 가고 싶은데 아이와 함께 갈 엄두가 안 나서 포기해야 했죠. 두산 베어스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인데 자연스레 야구장과 멀어지는 현실이 너무 슬펐어요. ‘별도의 공간이 아니라 관객석 가까이에 놀이방을 만들면, 부모가 그 앞에서 아이를 확인하면서 야구 경기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또 직관을 못 가는 아쉬움을 굿즈 소비로 달랠 수 있으면 좋은데, 굿즈의 종류나 퀄리티가 또 아쉬워요. 실용성 있으면서 보기에도 예쁜 그런 굿즈가 있다면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데 말이죠.”

‘야구 한 번 보러 가고 싶다’는 주변 지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야구 콘텐츠의 부재도 아쉽다. 신나는 응원가와 야구장의 열기를 느껴보는 것도 좋지만, 야구의 룰을 제대로 이해하면 경기를 보는 재미가 한층 깊어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제가 야구에 관해 알아가는 재미가 컸듯 경기 자체와 선수를 대상으로 한 콘텐츠가 아닌 야구의 규칙, 타격과 투구에 관한 정보를 쉽고 흥미롭게 설명해줄 수 있는 콘텐츠, 야구 채널이 생긴다면 좋을 것 같아요.”

‘봄이 오는 조짐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제비 소리가 아니라 야구방망이로 공을 치는 소리로 안다’는 전 화이트삭스 구단주 빌 비크의 얘기를 좋아한다는 천준아 작가. 경쾌한 타구음과 함께 시작될 2024시즌, 두산 베어스가 써 내려갈 또 한 번의 미라클을 뜨겁게 응원한다.

운명처럼 다가와 삶이 되어버린
나의 포항 스틸러스

#3 김정규* 아세아도 CMO

* ‌광고 마케팅을 15년 정도 했다. CJ ENM 계열 디지털 마케팅 회사 메조미디어 광고사업부에서 일하다 아세아도로 이직했다. 아세아도는 ‘미마 마스크’ 브랜드로 잘 알려진 위생용품 제조회사로, 그는 이곳에서 마케팅 전체를 총괄하는 책임자인 CMO로 일하고 있다.

입시 준비 대신 선택한 월드컵 준비

축구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하필 그때 재수를 했고, 입시학원은 대구 동성로 옆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옆에 있었다. 그곳이 다음 해 열릴 월드컵을 준비하는 이들의 아지트여서, 매일 북치고 노래하는 이들을 마주해야 했다. 그래서 입시 준비를 해야 할 때, 월드컵 준비를 했다. ‘축구’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시간과 노력을 오롯이 쏟아붓는 이들과 최고의 월드컵을 즐겼다. 그렇게 12번째 선수로 경험한 월드컵은 생애 최고의 이벤트이자, K리그 포항 스틸러스를 향한 찐한 사랑의 출발점이 됐다.

지난해 태어난 아들 우주의 50일 기념사진에 등장한 담요부터 50주년 기념 머플러 등 그간 모은 포항 스틸러스 굿즈를 소개할 때마다 당시의 추억이 흘러나온다. 사이트 오픈과 동시에 ‘광클릭’으로 구입했다는 올 시즌 우승 티와 머플러와 배지는 어제 배송된 핫한 신상 굿즈다.

“그렇게 보이진 않겠지만 패션이나 자기관리에 꽤 진심”이라는 김정규 CMO의 취향과는 살짝 거리가 있지만, ‘포항 스틸러스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2023년’을 기념하고 기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장 가치는 충분하다.

여전히 포항을 응원하게 하는 힘, 커뮤니티

특히 올해는 K리그 파니니 카드가 출시되면서, 카드를 모으는 새로운 재미도 생겼다. ‘어떤 선수가 나올까’ 기대하며 포장을 오픈하는 설렘도, 중복되는 카드를 주변의 K리그 팬들과 교환하는 즐거움도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가족 중심’의 소비를 우선순위에 두게 되지만, 가족 생활비 외에 저와 아내 각자의 용돈을 따로 책정하고 있어요. 덕분에 눈치 보지 않고 굿즈를 구입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파니니 카드를 개봉할 수 있는 거죠.(웃음)”

김정규 CMO는 처음 축구와 사랑에 빠진 20대 시절과 40대가 된 지금, K리그 팬으로서의 본질은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다만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기에 원하는 굿즈를 망설임 없이 소비할 수 있고, 해외 원정 응원도 갈 수 있게 됐다. 물론 시간을 낼 수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말이다.

“40대가 되면서 젊은 시절에 그랬듯 포항 스틸러스가 삶의 ‘중심’이 되기는 쉽지 않아요. 그래도 여전히 K리그, 포항 스틸러스는 제 삶의 ‘일부’이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커뮤니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20살에 만난 포항 스틸러스 대구 모임과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알게 된 포항 스틸러스 서울 모임의 구성원과 꾸준히 인연을 이어가고 있어요.”

좋아하는 것에 아낌없이 투자하다

‘포항 스틸러스 서포터 활동’이 김정규 CMO의 가장 중요한 취미 활동임에는 분명하지만, 다양한 취미가 하나둘 늘어나면서 그의 40대는 좀 더 다이내믹하게 흘러가는 중이다. 헬스클럽을 다니며 꾸준히 체력 관리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볼링과 골프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전 직장에서는 직접 꽃꽂이 동호회를 만들어서 활동하기도 했다. “자신의 행복을 중시하고, 나이에 상관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는 영포티의 특징과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것만큼, 자신을 위한 투자에도 망설임이 없다. 한의원에서 피부 미용 관리 정액권을 구입해 꾸준히 관리를 받고, OOTD 관련 영상이나 쇼츠를 주기적으로 찾아보며 온라인쇼핑을 즐기는 것도 ‘외적인 관리’가 나의 만족을 넘어 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서다. 아무리 바빠도 가족과 주기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쉼’이 전력 질주를 위한 발판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20대에도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 즐기는 삶을 살아왔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많았던 그때는 다양한 것을 경험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경제적 여유가 생긴 지금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에 집중해서 아낌없이 투자하고 소비하는 방향으로 바뀐 거죠.”

20대에도 내가 원하는 것을 즐겼지만,
시간이 많았던 그때는 경험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경제적 여유가 생긴 지금은
아낌없이 투자하고 소비하는 방향으로 바뀐 것 같아요.

팬심을 저격할 답은 소통에 있다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재미와 감동을 느낀다는 점에서 영화, 뮤지컬, 공연과 비슷하지만, 정해져 있지 않은 결말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에서 ‘스포츠’만의 매력이 있다. 김정규 CMO는 2002년 월드컵에서 그것을 처음 느꼈고, 포항 스틸러스를 응원해온 지난 20년은 그 느낌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구단에서 다양한 이벤트와 굿즈를 제공하는 것도 좋은 마케팅이겠지만, 팬들이 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소통 창구가 활성화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팬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정성 있게 들여다보면 그 안에 팬심을 저격할 답이 있지 않을까요?”

김정규 CMO는 일본 프로축구팀 우라와레즈의 포항 원정이 좋은 선례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우라와레즈 직원들은 경기 일주인 전 홈구장을 미리 방문해 팬들의 요청 사항을 전달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당시 포항구장 화장실에는 입구에만 화장지가 있었는데, 팬들의 편의를 위해 직접 휴지를 준비해서 칸마다 배치해도 되냐는 문의를 했다고 해요. 응원석에 스폰서 광고를 가리지 않고 걸 수 있는 플래카드의 개수와 사이즈를 측정해서 팬들에게 공지했고요. 한국까지 응원을 온 우라와레즈 팬들은 참 행복한 추억을 안고 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영포티 세대는 2002년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뜨거운 청춘 시절에 경험한 세대다. 2002월드컵을 가장 제대로 즐겼던 이들이기에, 언제든 마음속 불씨만 당겨지면 다시 열정적인 서포터즈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김정규 CMO의 생각이다. 그 불씨를 당기는 것은 팬들이 진짜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이는 소통이다.

PROSVIEW THEME : FAN INTERVIEW

이 페이지 공유하기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