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향아 사진. 전재천, OK금융그룹 스포츠단
연고지를 옮긴다는 것은 프로스포츠 구단에게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팀의 역사와 팬심, 그리고 앞으로의 리그 지형까지 다시 그려야 하는 결정이다. OK저축은행 읏맨이 부산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도권에 집중된 V-리그의 흐름을 남부권으로 넓히고, 이미 배구 저변이 단단한 부산에서 새로운 성장축을 만들겠다는 판단. 그 결심은 강서실내체육관에서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남자부 최대 규모의 이 경기장에서, 선수와 팬이 함께 만들어가는 ‘부산의 배구’가 시작됐다.
OK저축은행 읏맨의 주말 홈경기가 열린 날, 부산 강서실내체육관 주변은 이른 시간부터 팬들로 북적였다. 연인 단위뿐 아니라 부모와 아이가 함께 온 가족 관람객의 비중도 높았다. 경기장 앞에서는 푸드트럭과 체험 부스를 둘러보는 팬들의 동선이 꾸준히 이어졌고, 로비에서는 구단 공식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의 사진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날도 수천 명을 대상으로 유니폼 증정 이벤트가 진행되면서, 관중석 대부분이 ‘BUSAN’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유니폼으로 채워졌다.
부산 강서실내체육관은 OK저축은행 읏맨이 2025-2026시즌부터 새로운 홈경기장으로 사용하는 공간. OK저축은행 읏맨이 부산을 택한 배경에는 리그 전체를 향한 문제의식이 자리한다. 현재 V-리그 남자부 7개 팀 가운데 5개, 여자부 7개 팀 가운데 4개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이 구조에서는 장기적인 팬베이스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누군가는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내부 공감대가 형성됐고, 구단은 남부권 거점 도시를 검토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곳이 부산이다. 초·중·고 13개 배구팀과 200여 개 아마추어팀, 1,700여 명의 동호인이 활동하는 도시, 동호회 활동을 통해 배구를 ‘하는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 배구에 대한 애정을 담아 열렬하게 응원할 수 있는 ‘부산의 배구팀’에 대한 잠재적 수요도 충분하다고 봤다. 여기에 부산시의 적극적인 유치 의지가 더해졌다. 프로배구단을 통해 서부산 개발과 지역 경제 활성화, 유소년·생활체육 저변 확대를 이루겠다는 도시의 계획과 구단의 방향이 맞아떨어지면서, 연고 이전 논의는 속도를 냈다.
연고 이전 첫 시즌, 구단은 “조급해하지 않고 부산에서 배구를 알리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지만, 실제 현장에서 느껴지는 반응은 그보다 한발 앞서 있다. 취재를 위해 찾은 날 역시 강서실내체육관의 좌석은 전석 매진이었고, 관중 수와 매출, 구단 이벤트 참가자 수는 이전 연고지 시절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저희가 열심히 해서 시민분들께 멋진 경기와 부산에 대한 진심을 보여드린다면 천천히 팬으로 유입되실 거라고 기대했어요. 그런데 우리의 예상보다 부산 시민들의 기다림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선수들까지 매 경기 관중 수를 먼저 물어볼 정도로 열기를 체감하고 있어요.”
강서실내체육관 로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BUSAN’이다. 선수단 유니폼 가슴에도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다. 구단은 연고 이전 첫해, 모기업 로고보다 도시명을 전면에 배치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새로운 연고지에서 지역 정체성을 빠르게 구축하기 위한 전략이다.
로비 한쪽 벽에는 창단부터 챔피언 등극까지의 역사를 정리한 대형 패널이 자리하고, 그 옆에는 “인구 330만 부산으로! 변화의 시작, 새롭게 출발하는 OK!”라는 문구와 함께 부산 이전의 배경과 목표를 소개하는 섹션이 이어진다. 팬들은 입장 동선을 따라 이 패널을 지나며 팀의 과거와 ‘부산 OK저축은행 읏맨’으로서의 현재를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된다. 강서실내체육관은 남자부 가운데 가장 큰 4,067석 규모를 갖춘 경기장이다. 좌석과 코트 간 거리가 짧아 시야 확보가 잘 되고, 관람 환경을 고려해 확충한 테이블석은 V-리그 남녀부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수준이다. 접근성 역시 강점이다. 지하철 3호선 체육공원역에서 도보 5분 거리이며, 부산은 물론 김해 등 경남권 팬들이 이동하기에도 효율적인 위치다. 취재 당일 경기장을 찾은 황정민(24), 서수민(24) 씨도 김해에서 온 OK저축은행 읏맨의 새내기 팬이다. “최근 배구 예능을 보면서 관심이 생겼어요. 그런데 OK저축은행 읏맨이 부산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는데, 정말 반가웠어요. 이제는 차 타고 금방 오니까요. 유니폼에 ‘BUSAN’이라고 적힌 것도 너무 좋아요. 우리가 응원할 팀이 생긴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바로 멤버십도 가입했어요.”
연고 이전 확정 이후 부산시는 화장실 리모델링, 수유실 신설, 미디어석 개보수 등 관람객이 체감할 수 있는 시설 개선을 서둘렀다. 편의점 입점과 MD숍, 대형 전광판과 3면 LED 설치 등 프로경기장으로서의 기본 인프라도 하나씩 갖춰졌다. 새로운 연고지에서 처음 배구장을 찾는 관람객이 많은 만큼, 구단은 경기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공간과 편의 인프라부터 세심하게 손을 보았다. 식음 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점은 편의점과 푸드트럭, 그리고 이를 편히 즐길 수 있는 테이블·파라솔 배치로 차근차근 보완 중이다.
연고 이전 첫해, 구단이 가장 먼저 집중한 것은 부산 시민과 팀 사이의 새로운 접점을 만드는 일이다. 경기장에 오기 전부터 배구가 자연스럽게 친숙해질 수 있도록 도시 곳곳에 경험의 지점을 넓혀갔다. 시즌 개막 전부터 지역 축제에 배구 체험 부스를 운영해 직접 공을 쳐보고 점프·스파이크를 경험하게 했고, 부산 도심 백화점에서는 유니폼과 굿즈를 전시·판매하는 팝업스토어를 열어 “이제 부산에도 남자 프로배구단이 생겼다”는 메시지를 알렸다.
학교 대상 프로그램도 촘촘하게 설계됐다. 부산 초등학교 30개교를 모집해 ‘찾아가는 배구교실’을 운영했고, 초등학교 1학년 4,200명에게 응원 티셔츠를 전달해 티셔츠 지참 시 무료입장이 가능한 혜택을 제공했다. 배구를 처음 접하는 아이들이 경기장을 친숙하게 느끼고, 가족 단위 관람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한 장치다.
홈경기 날 강서체육공원은 하나의 축제 공간이 된다. 체육관 앞에는 푸드트럭이 줄지어 서고, 로비에는 점프·스파이크를 측정하는 배구 체험존과 포토이즘 촬영 부스, MD샵이 팬들을 맞이한다. 출석체크 이벤트, 특정 경기 테마 데이, 응원 티셔츠 증정 등은 시즌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장치로, ‘처음의 흥미’가 ‘다음 관람의 이유’가 되도록 하는 구단의 전략이다.
구단 관계자는 “연고 이전 이후 관중 수와 굿즈 판매액 모두 두 배 이상 늘었다”고 설명한다. 실제 데이터도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한다. 1라운드 출석 인증 참여자는 전 시즌 대비 297% 증가했고, 홈 5경기 기준 관중 수는 106% 증가, 관람 수입은 220% 증가했다. 숫자가 말해주는 변화는 분명하다. 부산이라는 새로운 연고지에서 마련한 다양한 접점과 경험들이 재방문으로 이어지며, ‘부산의 배구팀’으로서의 존재감은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Mini Interview
인터뷰이. 김수열 대리 (OK저축은행 읏맨 스포츠마케팅팀)
부산으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건 ‘어떻게 하면 새로운 팬들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을까’였습니다. 배구를 처음 접하는 분들도 많다 보니, 경기장에 오는 순간부터 편안하고 즐거운 기억을 만들 수 있도록 공간과 프로그램을 세심하게 준비하고 있어요. 팬들의 뜨거운 응원이 하루하루 실감 나고, 그만큼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집니다. 연고 이전 과정에서 마음 한켠이 늘 무겁기도 했습니다. 안산에서 12년 동안 함께해주신 팬분들을 생각하면 감사함과 미안함이 동시에 들어요. 그래서 더욱 성실하게, 한 경기 한 경기를 책임감을 갖고 준비하려고 합니다. 간혹 부산 경기장에 안산 팬분들이 찾아오시면 정말 반갑고 힘이 나요. 부산에서도, 안산에서도 오래 사랑받는 팀이 될 수 있도록 더 많이 고민하고 노력하겠습니다.
OK저축은행 읏맨의 부산 이전은 구단만의 프로젝트가 아니다. 부산시는 프로배구단 유치를 통해 서부산 개발과 지역 경제 활성화, 배구 유망주 육성, 동호인 저변 확대까지 연결되는 체육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강서구민에게는 입장권 50%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부산교육청과 협력해 학교 단체 관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자체와 구단은 시즌 내내 긴밀하게 호흡을 맞추고 있다.
실제로 한 경기에는 300명 규모의 학교 단체가 관람을 오기도 했고, 강서체육공원 관리 주체는 “아시안게임 이후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적이 없었다”고 달라진 풍경을 전했다. 강서실내체육관은 더 이상 생활체육 중심 경기장이 아니라, 서부산의 프로스포츠 관람 문화를 이끄는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번 유치를 통해 부산은 프로야구(롯데 자이언츠), 프로축구(부산 아이파크), 남자·여자 프로농구(부산 KCC 이지스, 부산 BNK 썸), 그리고 프로배구(OK저축은행 읏맨)까지 4대 프로스포츠 구단을 모두 보유한 네 번째 도시가 됐다. 그 과정에서 지역 배구 유망주들에게는 새로운 꿈의 무대가 열렸고, 수도권 원정으로만 배구를 보던 팬들에게는 ‘집 근처에서 즐기는 배구’라는 선택지가 생겼다. 연고 이전 첫 시즌을 보내는 지금, 강서실내체육관은 여전히 채워나가야 할 부분이 많은 경기장이다. 그러나 ‘BUSAN’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과 같은 글자로 관중석을 가득 메운 팬들을 보면, 이곳에서 이어질 다음 장면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