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SA 한국프로스포츠협회

Vol. 19 2025

글. 최재붕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4차 산업혁명, 디지털 문명 변화, AI 시대 대전환 등 핵심 트렌드를 국내에 알린 대표적 석학으로, 현재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 문가 위원이자 서울특별시 미래혁신산업 명예시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재붕의 글로벌 AI트렌드>, 등의 저서가 있다.

AI 시대,
혁명은 자본에서 시작된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인류의 삶은 혁명적으로 변화했다. 이에 따라 산업생태계와 시장의 레거시도 혁명적인 체제 변화를 피할 수 없었다. 스마트폰을 마치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게 된 인류의 선택이 표준 문명 자체를 바꿔버린 탓이다. 2007년 아이폰이 등장한 지 18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전통의 레거시가 교체되는 현상을 실감하고 있다. 그런데 그 변화를 뛰어넘는 AI 혁명이 다시 가까운 미래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예고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또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는 신문명시대에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생존의 전략을 세워야 할까? 그 비결은 이미 인류 역사에 교훈으로 새겨져 있다.

인류는 AI 혁명으로 진입했다. 거대한 자본이 모두 AI 기업으로 몰리면서 혁명을 위한 에너지가 풀충전되었다. 2024년 6월 기준, AI를 대표하는 세계 10대 기업(엔비디아·MS·애플·구글·아마존·메타·테슬라·브로드컴·TSMC·텐센트)의 시총합계는 이미 2경 3,000조 원을 넘어섰다. 그런데 2025년이 되자 3경 원을 초과하더니 11월 1일 기준 무려 3경 7,000조 원에 다다랐고, AI의 상징 기업 엔비디아의 시총은 5조 달러(7,300조 원)를 돌파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자본이 유입되면서 AI 버블론이 확산될 정도다. 이 자본은 AI 혁명을 이끌어낼 에너지가 된다. 그동안 어려울 거라고 생각되던 무인자율주행차, 휴머노이드 로봇, 전투 로봇 등 상상으로만 그려왔던 제품들이 피지컬 AI라는 이름으로 조만간 대거 쏟아질 거라 예상되고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 거대 자본이다.

AI를 대표하는 세계 10대 기업의 시총 합계는 무려 3경 7,000조 원에 달한다. © shutterstock

인류는 AI 혁명으로 진입했다.
거대한 자본이 모두
AI 기업으로 몰리면서
혁명을 위한 에너지가 풀충전되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자본이 유입되면서
AI 버블론이 확산될 정도다.

AI 시대를 열어가는
영웅들의
‘브랜드 전략’

최근 삼성동의 한 치킨집으로 이재용 회장과 정의선 회장을 초대해 ‘깐부’를 맺은 엔비디아의 총수 젠슨 황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꿈꾸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2025년 CES 기조연설에 17대의 로봇과 함께 등장했을 정도다. 젠슨 황은 자기 지분을 팔아 로봇산업에 투자한다고 공언했다. 지분 1%를 팔면 70조, 5%를 팔면 350조의 거액이 된다. 올해 우리나라 과학기술 R&D 예산 총액이 34조인 걸 감안하면 이 금액이 얼마나 엄청난 액수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휴머노이드 실용화와 양산의 길은 아직 멀고 험하다. 적어도 3년은 더 걸릴 것이고 투자 금액도 수백조 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래서 자본이 없다면 어느 기업도 도전하기 어려운 제품이다. 그런데 엔비디아라면 할 수 있다. 매출이 나올 때까지 500조 원을 투입해도 회사는 끄떡없기 때문이다. 젠슨 황이 깐부를 맺어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그래서 피지컬 AI 시대를 열어갈 미래 기업으로 세상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이다. 마케팅 입장에서 보면 어떤 TV광고보다 큰 광고 효과를 깐부 치맥 러브샷 하나로 만들어낸 셈이다. 이 이벤트 하나로 엔비디아는 물론이고 삼성전자와 현대차까지 피지컬 AI 대표기업으로 각인되었다. 젠슨 황의 대단한 마케팅 능력이다.

이걸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은 물론 일론 머스크다. 2003년 창업한 테슬라를 TV광고 하나 없이 세계 최고의 브랜드이자 2,000조 원 시총의 기업으로 키워냈으니까. 그가 메타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와 설전을 벌이다 UFC에서 격투기로 한판 붙자고 했던 해프닝은 무려 10조 원 이상의 광고 효과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디지털 인류의 생활 공간이 SNS로 옮겨가고 거대한 팬덤을 보유한 크리에이터들이 세상의 이슈를 모두 장악하면서 일어나는 신문명의 현상들이다. 이들은 모두 디지털 시대를 넘어 AI 시대를 이끄는 중심 인물들이다. 특이한 것은 이들이 기술에 대한 소개보다 사람들과의 공감대를 넓히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AI 시대를 열어가는 영웅들의 ‘브랜드 전략’이다. 이들은 스스로 크리에이터가 되어 자연스런 팬덤을 창조하고 이를 통해 기업 밸류를 무한 상승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축적된 자본은 다시 기술 개발에 투입된다. 브랜드 파워 상승은 덤이다. 물론 TV 방송국에 1원도 광고비로 지불하지 않았다.

엔비디아 총수 젠슨 황, ‘깐부’ 한 번으로 한국 빅테크를 엮고 TV광고를 뛰어넘는 파급력을 만들었다. © 연합뉴스

젠슨 황은 ‘깐부’ 한 컷으로, 머스크는 SNS 서사로···
AI 시대, 영웅들은 광고 대신 팬덤을 쌓는다.
특이한 것은 이들이 기술에 대한 소개보다
사람들과의 공감대를 넓히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독과 좋아요’
소비자 권력 시대

인류는 이제 팬덤 경제로 진입했다. 과거에는 거대 기업의 브랜드 파워 그리고 막강한 자본을 이용한 대중광고 파워로 시장의 독보적 지위를 유지하는 게 상식이었다면, 이제는 고객으로부터 ‘구독과 좋아요’를 선택받아야 생존할 수 있는 소비자 권력 시대로 확실하게 진입해 버렸다. 물론 아직도 TV광고나 전통적 대중 매체를 무시할 수 없긴 하지만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주로 고령층을 대상으로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최근 젊은 층을 겨냥한 스포츠 브랜드들은 아예 TV광고를 중단하는 추세다. 이유는 명확하다. TV광고가 나오는 순간 MZ세대는 내가 입어서는 안 되는 ‘아재 브랜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특히 강력한 팬덤을 가진 힙한 브랜드일수록 TV광고를 멀리하는 경향이 강하다.

‘소비자가 왕이다’라는 표현은 디지털 문명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 권력의 방향과 강도는 데이터를 통해 드러난다. 이 시대 팬덤 경제의 황제 기업은 누가 뭐래도 테슬라다. 검은색 터틀넥 티셔츠에 청바지, 뉴발란스 운동화로 세상을 사로잡은 팬덤 경제의 원조 황제격인 스티브 잡스의 왕관을 물려받았다. 일론 머스크는 훨씬 도발적이다. 그가 이끄는 고객소통 미디어와 팬들의 열정적 반응은 엄청난 팬덤 데이터를 만들었고, 이로 인해 영업 실적을 훨씬 넘는 주가 상승을 이끌어 냈다. 일론 머스크는 자율주행차, 스페이스X, 그록4, 스타링크, 옵티머스 등 거의 모든 신산업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과시할 뿐 아니라 가장 스마트한 방식과 적은 비용으로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덕분에 자동차 판매실적은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시가총액은 2,000조 원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테슬라의 브랜딩 전략은 거의 모든 기업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있다. 핵심은 우선 실력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건 그걸 고객에게 공감시키는 능력이다. 일론은 그런 면에서 발군이다. 물론 극단적인 정치적 성향 탓에 안티팬도 많지만, 기술적 역량과 소통 능력만큼은 따라올 기업이 없다.

AI 시대를 이끌고 있다는 피터 틸의 팔란티어도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열고 다양한 굿즈를 판매한다. 팔란티어는 태생이 방산인 기업인데 이들에게도 고객과의 소통과 팬덤은 포기할 수 없는 핵심전략이라는 뜻이다. 고객은 아니어도 이들의 팬덤은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에너지가 된다. 이런 전략은 거의 모든 빅테크 기업들, AI 스타트업들의 마케팅 트렌드가 되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브랜딩 전략은 거의 모든 기업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있다. © shutterstock

이 시대 팬덤 경제의 황제 기업은
누가 뭐래도 테슬라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고객소통 미디어와
팬들의 열정적 반응은 엄청난 팬덤 데이터를 만들었고,
이는 영업 실적을 훨씬 넘는
주가 상승을 이끌어 냈다.

강력한 팬덤이 만든
대한민국 문화의 성과

<케이팝 데몬 헌터스> 안에는 한국문화의 디테일이 담겨 많은 상품들의 폭발적 소비를 유발시켰다.
© shutterstock

하이테크를 지향하는 B2B 기업들조차 소비자에 대한 소통과 팬덤 관리를 중시하는 상황이라면, B2C 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들의 주무대는 당연히 SNS다. 특히 올해는 K-팬덤의 파워가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글로벌 시장을 휩쓸고 있다. K-POP, K-드라마의 팬덤을 뷰티·푸드·패션까지 이어받아 글로벌 급의 성장을 이어가는 중이다. 로제의 ‘아파트’가 일으킨 K 열풍이 심상치 않더니 뒤를 이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그야말로 글로벌시장 전체를 뒤흔드는 태풍이 되었다.

팬덤 경제에서 음악은 매우 중요한 지표다. 대중음악은 인류의 무의식을 지배하며 강력한 중독성을 지니고 있어 소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케데헌의 ‘골든’은 무려 8주간 빌보드 핫100 1위를 차지했고, 그 지속력도 강력했다. 인기의 출발점이었던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안에는 다양한 한국문화의 디테일이 담겨 많은 상품들의 폭발적 소비를 유발시켰다. 주인공들이 먹은 과자, 컵라면, 김밥까지 전 세계로 수출이 크게 확대되었고, 심지어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의 더피와 서씨를 닮은 굿즈까지 매진 사태를 만들어냈다.

가장 큰 수혜를 본 건 역시 화장품이다. 이미 북미와 유럽에서 상당한 팬덤을 확보하고 있었던 에이피알과 구다이글로벌의 브랜드들은 불타는듯한 매출 폭발이 이어지면서 모두 10조 원 밸류의 기업들로 성장했다. 에이피알의 시가총액은 아모레퍼시픽과 시셰이도까지 훌쩍 넘어버렸다. 명품 선글라스 브랜드로 도전한 젠틀 몬스터는 구글글라스와의 컬래버 계약까지 따내면서 세계적인 명품 반열에 올라섰다.

이들의 성장에 탄탄한 뿌리가 되어준 것은 대한민국 문화에 대한 세계인들의 강력한 팬덤이다. 과거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불리던 국가 브랜드 파워가 이제는 기업 성장에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 기업의 성장을 이끈 메인 파워는 고객의 팬덤을 만든 ‘실력’이다. 팬덤 경제에서는 고객의 칭찬이 강력한 권력이 되지만, 반대로 불만 댓글 릴레이만으로도 영원히 소멸될 수 있다. 이 모든 걸 이겨내고 팬덤을 지속적으로 지켜내는 전략과 실천력이 브랜드를 키우는 기업의 진정한 실력이 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스퀘어의 ‘메디큐브’ 광고 © 에이피알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진행한 티르티르 팝업스토어 © 구다이글로벌

성공 여부는
고객의 경험에서 나온다

팬덤 경제에서 크리에이터가 만드는 미디어는 강력한 광고 파워를 발휘한다. 에이피알과 구다이글로벌, 젠틀몬스터 등은 이러한 광고전략을 적극 활용해 성공한 사례다. 그런데 결국 성공의 여부는 고객의 경험에서 나온다. 고객의 열광적인 리액션을 끌어낼 수 있는 실력이 부족하다면, 아무리 강력한 크리에이터의 팬덤을 활용하더라도 지속적인 브랜드 파워를 만들 수 없다. 반대로 아무리 실력이 있더라도 고객과의 접점을 찾지 못한다면 역시 성공할 수 없다.

비즈니스에서 여전히 마케팅은 핵심이다. 다만 그 중심에 타깃 고객이 열광하는 크리에이터가 있어야 한다. 때로는 CEO가 될 수도 있고 유명 배우나 인플루언서가 될 수도 있다. 소비자의 마음은 언제나 복잡 미묘하다. 그들을 사로잡으려면 디테일에 강해야 한다. 그 디테일은 인간에 대한 깊은 배려와 세심한 살핌이 있을 때 발휘된다.

TV광고에 익숙해 있던 기업들이 같은 방식으로 크리에이터 광고를 따라했다가 낭패를 보는 것은 바로 그 디테일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대 기업은 분업이 일반화되어 있다. 개발팀은 개발만 하고 마케팅은 마케팅만 한다. 사일로에 갇혀 협업을 하기 어려운 구조다. 고객의 미묘한 반응을 캐치해서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애자일 시스템은 더더욱 어렵다.

거대한 자본과 브랜드 파워로 일방향 광고만 내보내면 시장을 지배할 수 있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고객이 왕이라면 왕의 기분에 민감한 조직으로 바꿔야 한다. 고객이 왕이라면 세계관도 왕에 맞춰 바꿔야 한다. 그걸 제대로 하려면 스티브 잡스가 강조한 휴머니티와 인문학을 접목해야 한다. 그만큼 인간의 마음은 모호하고 어렵고 예민하다. 그래도 배워야 한다. AI 문명시대도 그 지향점은 여전히 고객의 팬덤이니까.

그러나 성공 여부는
고객의 경험에서 나온다.
고객의 열광적인 리액션을
끌어낼 수 있는 실력이 부족하다면,
아무리 강력한 크리에이터의
팬덤을 활용하더라도
지속적인 브랜드 파워를 만들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