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윤희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문화유산과 현대미술, 고미술 등 시각예술을 취재하고 이를 바탕으로 글을 쓰고 있다. 일본 오사카대학교 동양미술사연구소에서 연수했다.
국립박물관 공식 상품 ‘뮷즈’가 큰 인기를 끌며 연일 품절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뮷즈는 뮤지엄과 굿즈를 합친 단어로, 국중박과 소속 지역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을 바탕으로 만든 문화상품 브랜드다. 올해 뮷즈 매출액은 처음으로 300억 원을 넘어섰다. 연간 매출이 300억 원대를 기록한 건 2004년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설립 이후 처음이다.
뮷즈 매출뿐 아니라 관람객 수도 신기록을 세웠다. 국중박은 올해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이 처음으로 500만 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올해 1월 1일부터 지난 10월 15일까지 누적 관람객 총 501만 6,382명. 영국 미술 매체 <아트 뉴스페이퍼>가 발표한 2024년 세계 박물관 관람객 조사에 따르면, 연간 방문객이 500만 명을 넘는 박물관은 전 세계 4곳뿐이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 873만 7,050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바티칸 박물관(682만 5,436명), 영국박물관(647만 9,952명), 메트로폴리탄 미술관(572만 7,258명), 테이트 모던(460만 3,025명)이 2~5위를 차지했다. 작년 관람객 수 기준으로 보면 국중박은 루브르·바티칸·영국·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이어 5위에 해당한다.
‘500만 관람객’ 돌파의 일등 공신으로 ‘뮷즈 열풍’이 꼽힌다. 요즘도 주말이면 박물관 문이 열리기도 전에 ‘오픈런’한 관람객들이 대기 줄에 서서 기다리다가 입장하자마자 무섭게 상품관으로 달려간다. 온라인에서 이미 품절된 따끈한 뮷즈들을 손에 넣기 위해서다.
자료: 국립박물관문화재단
© 넷플릭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뮷즈 매출액은 약 306억 4,000만 원. 전년 매출액(약 213억 원) 대비 44% 껑충 뛰었다. 재단은 “당초 연말쯤 300억 원 대를 달성할 것으로 내다봤으나 그보다 두 달 앞당겨 신기록을 세웠다”고 했다.
특히 하반기 들어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4~6월에 평균 20억 원대였던 뮷즈 매출은 7월 한 달간 49억 5,700만 원을 기록하며 배로 늘었고, 8월에는 52억 7,600만 원을 달성했다 100억 원이 넘는다. 무엇보다 올해 6월 개봉한 뒤 전 세계적으로 열풍. 박물관의 여름 성수기인 7~8월 매출만 을 일으킨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효과가 컸다. ‘케데헌’ 열풍이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매층은 주로 20~30대다. 지난해 국립박물관 상품관에서 뮷즈를 구입한 관람객 연령을 분석했더니 30대가 36.6%로 가장 많았고, 이어 20대 17.4%, 40대 17.3%, 50대 이상 17.1% 순이었다. 박물관을 방문해 뮷즈를 사는 외국인도 늘고 있다. 2020년에는 박물관 상품관에서 뮷즈를 구입한 외국인이 전체 구매자의 5.9% 수준이었으나 점차 증가해 작년에는 16.8%를 차지했다. 재단 관계자는 “뮷즈가 단순 기념품을 넘어 박물관 흥행을 견인하는 효자 상품이 됐다”고 말했다.
©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박물관 상품이 단순 기념품에 그쳤던 과거와 달리 통통 튀는 요즘 뮷즈는 아이디어가 번득인다. 지난해 출시 직후부터 1년 내내 품귀 현상을 일으킨 ‘취객 선비 3인방 변색 잔 세트’가 대표적이다. 조선 후기 화가 김홍도의 ‘평안감사향 연도’ 속 취객 선비를 모티프로 개발했다. 소주를 따르면 유리잔 겉면에 그려진 선비 얼굴이 빨개지면서 만취한 모습으로 변한다.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특수 안료를 사용한 것으로 지난해 6만개 넘게 팔리면서 약 15억 원 매출을 기록했다. 2023년 하반기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선정된 상품이다.
전통문화를 고루한 게 아니라 힙한 것으로 즐기는 젊은 세대는 소장 욕구를 부르는 뮷즈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석굴암을 3D 프린트해 만든 ‘석굴암 조명’은 출시 직후 “방구석도 경주가 되는 마법”이라며 인기를 끌었다.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를 모티브로 만든 ‘신라의 미소’ 소스볼 세트, 약사여래 찜질 핫팩 인형도 지난해 많이 팔린 히트 상품이다. 방탄소년단 멤버 RM이 소장해 화제가 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와 백제 금동대향로 미니어처는 효자 상품으로 등극했다. 올해는 곤룡포 비치 타월, 단청 무늬를 입힌 기계식 키보드, 금관 브로치가 특히 인기를 끌었다.
‘뮷즈’의 흥행 비결은 뭘까.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사업본부 4인방에게 물었다. 기업 마케터 출신 김미경 본부장, 공모 전담 김은숙 차장, 7년차 디자이너 서지희 과장, 6년차 막내인 디자이너 김수민 대리.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뻔하고 지루한 상품밖에 없었던 박물관 굿즈를 혁신해 ‘힙 트레디션의 대표 주자’로 만든 주역이다.
김미경 본부장은 “디자인이 예쁘고 유니크한 상품들이 반응이 좋다”며 “희소성의 가치가 있고, 유물이 가진 콘텐츠와 상품이 잘 어울려야 인기가 있다”고 했다. 김 본부장은 음료 ‘아침햇살’ 등을 히트시킨 기업 마케터 출신이다.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싶어 2016년 재단에 합류했다. 당시 박물관 상품은 기념품 수준이었다. 김 본부장은 “젊은 세대가 좋아할 만한 아이템 개발에 주력했다”며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시구를 넣은 유리컵이 품절되면서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2020년 11월 출시한 총천연색 반가사유상 미니어처가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김 본부장은 “출시 직후 온라인 서버가 마비될 정도였고, 6차 판매 모두 조기 품절 사태를 빚었다”고 했다. 이듬해 국립중앙박물관 대표 공간인 ‘사유의 방’이 탄생하면서 미니어처도 함께 시너지가 났다.
고려청자 에어팟은 2020년 하반기에 히트 친 상품이다. 김은숙 차장은 “당시 코로나 시기에 사람이 희망적인 걸 찾는 분위기여서 민트색인 고려청자 에어팟이나 파스텔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에 끌렸던 것 같다”고 했다. MZ 세대인 두 디자이너는 ‘신선함’과 ‘퀄리티’를 비결로 꼽았다. 서지희 과장은 “한 번쯤 교과서에서 봤거나 수학여행 가서 봤던 유물이라 또래 친구들도 좋아한다”고 했다. 김수민 대리는 “퀄리티가 높다는 게 강점이다. 박물관 가는 경험을 기념하는 의미로도 상품을 간직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 국립박물관문화재단
판매가격(원): 14,900
판매금액(백만 원): 973
판매가격(원): 26,000
판매금액(백만 원): 468
판매가격(원): 45,000
판매금액(백만 원): 447
판매가격(원): 119,700
판매금액(백만 원): 429
판매가격(원): 65,000
판매금액(백만 원): 239
판매가격(원): 18,500
판매금액(백만 원): 208
판매가격(원): 98,000
판매금액(백만 원): 199
판매가격(원): 25,000
판매금액(백만 원): 192
판매가격(원): 106,000
판매금액(백만 원): 187
판매가격(원): 39,000
판매금액(백만 원): 175
개인과 기업을 상대로 한 ‘뮷즈 정기 공모’도 통통 튀는 아이디어의 산실이다. 올해 열린 뮷즈 아이디어 공모 수는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2025 뮷즈 정기 공모에 지난해보다 두 배 많은 3,000종이 접수돼 90종을 당선작으로 발표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출시된 ‘취객 선비 3인방 변색 잔 세트’도 공모를 통해 탄생한 작품이다. 석굴암을 3D 프린트해 만든 ‘석굴암 조명’도 지난해 공모 당선작이다. 김은숙 차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출시까지 이어지는 상품이 거의 없었지만, 요즘엔 작정하고 준비하는 1인 기업이 많아졌다”고 했다.
현대 작가나 브랜드와의 협업도 많아졌다. 지난해 출시한 ‘롱롱타임플라워 초충도 에디션’은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알려진 ‘초충도’를 현대미술 작가 나난이 재해석해 만들었다. 지난 1월엔 스타벅스와 협업해 매화가 활짝 핀 서옥의 고즈넉한 운치를 담은 텀블러와 머그잔을 출시했다. 조선 말 화가 이한철의 그림 ‘매화에 둘러싸인 서옥’이 바탕이 됐다. 정용석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사장은 “뮷즈는 유물 원본을 대신해 문화유산의 가치를 전파하는 홍보대사”라며 “국립중앙박물관을 찾는 해외 미술관장들도 뮷즈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만큼 더 많이 수출해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했다.
© 국립박물관문화재재단
© 스타벅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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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뮷즈 개발도 이어가고 있다. 재단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기념해 지난 10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개막한 신라 금관 특별전을 계기로 ‘천마총 금관 키링’, ‘금관총 머그컵’ 등 관련 상품을 선보였다.
지난 11월에는 한국야구위원회와 협업해 ‘야구 국가대표팀 기념상품’을 출시했다. 나전 칠 연꽃 넝쿨무늬 상자, 나전 칠 십장생무늬 함, 일월오봉도 등 국립박물관 소장 유물의 색감과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만들었고, 출시 상품은 레플리카 유니폼, 모자, 티셔츠, 마킹키트, 키링, 부채, 기념구, 응원배트 등 10종으로 구성됐다. 재단 측은 “국민 스포츠인 야구와 박물관 소장 문화유산의 결합은 우리 문화의 매력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뜻깊은 시도”라며 “이번 협업이 야구 팬들에게 전통문화를 새롭게 경험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으로의 과제는 현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집중된 상품 개발을 지방 유물로 확대하는 것. 김미경 본부장도 “지방에 있는 국립박물관 유물을 좀 더 다양하게 상품화하는 것”을 숙제로 꼽았다. 김 본부장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금동대향로를 파스텔톤 미니어처로 만들어 상품관에 진열했더니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이걸 보면서 유물 공부를 하더라”라며 “교과서에서 본 작품이라면서 문양 얘기를 서로 주고받았다. 뮷즈가 곧 ‘문화유산 홍보대사’라는 걸 절감했다”고 했다.
뮷즈의 성공은 다른 산업에도 여러 가지 가능성을 시사한다. 박물관 관계자들은 “전통은 고루하다는 편견을 깨고 가장 힙한 것으로 만든 발상의 전환, 젊은 층이 좋아할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발굴하는 노력, 공모를 통해 누구나 아이디어 개발에 동참할 수 있게 창구를 넓힌 것 등이 복합적 시너지를 냈다”고 평가한다. 재단은 “앞으로도 문화유산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내 누구나 일상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을 꾸준히 개발할 것”이라고 했다.
© 국립박물관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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