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신 사진. FIFA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
2026년 월드컵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전환점이 될 만한 대회다. 먼저 출전 국가 수가 32개에서 48개국으로 무려 16개국으로 늘었다. 본선 참가국이 더 늘어야 더 많은 국가들의 관심을 더 끌고 흥행 수익이 극대화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렇다면 5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대규모 경기장을 가진 도시가 더 많아야 하고 개최국의 부담이 더 늘어난다. 이에 따라 최초로 미국, 멕시코, 캐나다 3개국이 공동 주최하게 되었다. 이전 월드컵에서 예선이 벌어지는 도시는 적게는 8개에서 많게는 12개였다. 48개국이 참여하는 2026년 월드컵의 개최 도시는 16개다. 훈련 시설, 숙박 시설, 교통 인프라 등의 부담을 분산시키고자 북미 3개국이 모두 개최하는 월드컵이 된 것이다. 또 하나 2026년 월드컵의 전환점은 공식 포스터가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는 개최국이 세계를 대상으로 자국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포스터는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띠기 마련이다. 3개국이 개최하는 대회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국가보다는 개최 도시의 지역적 특성을 드러내는 포스터 16개를 제작하게 되었다. 16개 도시에 각각 포스터를 할당하여 각 도시가 월드컵 개최지로서의 정체성과 역할을 명확하게 드러내도록 했다. 각 개최 도시별 포스터의 의도와 특징을 소개한다.
만화풍의 콜라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도시의 에너지와 월드컵에 대한 기대감을 생동감 있게 그렸다. 중심에는 조지아주의 상징 과일인 복숭아 속에서 거대한 황금 축구공이 솟아오르는데, 이는 ‘환대 문화’로 유명한 미국 남부가 세계인을 환대한다는 의미다. 그 밑에는 애틀랜타의 유명한 건축물들과 그것이 이루는 스카이라인, 조지아 주 청사, 애틀랜타 경기장, 마틴 루터 킹 생가, 크로그 스트리트 터널 등 도시의 주요 랜드마크들이 수록되었다.
바닷속 해양 생명들이 축구를 하는 판타지를 표현했다. 가재가 골키퍼가 되어 골대를 막고 있고, 문어가 찬 공은 물 밖으로 튀어 올라간다. 보스턴의 해안가와 스카이라인, 그리고 활기찬 해양 문화가 잘 표현되었다. 바닷속 가재의 집게 팔 옆에는 수장된 차상자가 있는데, 이는 18세기의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을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이 포스터는 곳곳에 숨은 보스턴의 문화와 역사를 찾는 재미를 담았다. 해양 생명체들의 축구라는 판타지에 맞게 동화책 삽화나 만화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댈러스가 속한 텍사스는 서부개척시대와 카우보이로 유명한 주다. 그 카우보이가 모자와 복장을 갖춘 채 오버헤드 킥으로 공을 차고 있다. 그 공은 댈러스의 랜드마크인 리뉴니언 타워의 원형 전망대와 정확히 겹쳐 있다. 지상의 붉은 색은 댈러스의 정체성 스카이라인을 표현하고 있고, 파란색 하늘에는 텍사스 주기의 상징인 별들이 수놓아 있다. 붉은색과 파란색 별은 텍사스 주기의 상징이다.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무명의 카우보이를 통해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보편적인 기회의 세계를 표현했다.
과달라하라는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서 멕시코 전통문화의 발상지다. ‘리아치라’라는 전통 음악의 고향이고, ‘타스토아네스’라는 전통 가면 축제 등 민속 축제의 도시다. 이런 전통 음악과 춤을 소재로 한 이미지가 지역 도자기와 공예품에 표현된 패턴으로 복잡하게 표현되었다. 그림 속에는 9개의 나비가 숨어 있는데, 이는 예술의 9가지 뮤즈를 상징하며, 과달라하라가 예술 도시라는 것을 표시한다. 중앙 아래에는 과달라하라의 축구 성지인 에스타디오 아크론 경기장을 삽입했다.
휴스턴은 나사(NASA)의 도시이며, 동시에 댈러스처럼 텍사스 주에 속한 카우보이의 도시이기도 하다. 이러한 도시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우주인, 카우보이 모자, 배경의 태양계, 하늘의 별, 그리고 휴스턴의 스카이라인을 그려 넣었다. 여기에 우주인이 가슴으로 트래핑한 공, 태양계 가장자리의 축구 골대로 축구를 표현했다. 파랑색과 오렌지색이 주조 컬러인데, 이는 휴스턴의 상징 컬러다. 손으로 표시한 사인은 휴스턴의 이니셜 H를 의미한다.
축구의 응원 도구인 머플러를 나선형으로 감아 캔자스시티의 도시 정체성과 축구의 열정을 표현했다. 맨 위는 해바라기 들판이 펼쳐진 캔자스 주 풍경에서 축구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박진감 넘치는 축구 경기가 펼쳐진다. 마지막은 경기가 끝난 뒤 축제의 모습으로 BBQ 파티와 재즈 음악, 분수(캔자스시티는 분수로 유명한 도시)로 이어진다.
다른 포스터와 달리 강렬한 대비가 돋보인다. 근경에 공을 차려는 축구 선수의 뒷모습이 커다랗게 묘사되어 있다. 그가 차려는 공은 LA의 스카이라인 뒤로 지는 커다란 해다. 시간대는 골든 아워로 도시의 모습과 선수가 어둡게 실루엣으로 표현되어 있고, 하늘은 노을이 있고 아직 완전히 어둡지는 않다. 거대한 선수와 작은 도시, 밝음과 어둠의 대비가 드라마틱하다. 여기에 LA를 상징하는 야자수가 있고, 도심에는 영화산업을 상징하는 서치라이트가 보인다.
전반적인 색조는 마이애미의 상징인 네온 블루와 핑크 톤으로 도시의 밤거리와 해변을 연상시키도록 했다. 중앙에는 플라멩코 한 마리가 축구화와 스타킹을 신고 공중을 날듯이 부유하고 있다. 플라멩코는 마이애미와 플로리다의 상징 동물이자 도시의 화려함을 나타낸다. 축구공 배경에는 마이애미 해변, 야자수, 도시 스카이라인, 그리고 환호하는 주민들이 묘사되어 있다. 플라멩코 밑 축구공 안에는 리틀 하바나, 사우스 비치, 코럴 게이블스, 윈우드 등 마이애미의 여러 이웃 지역들을 상징한다.
멕시코시티 호스트 포스터는 모두 한 작가 쿠에만체가 그린 것이어서 같은 형식으로 그 안의 내용만 바뀌어 있다. 멕시코시티 포스터는 중앙에 에스타디오 아스테카 경기장과 독립기념상 엘 앙헬, 그리고 벨라스 아르테스 궁전(미술관)의 돔을 배치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좌우로 두 팀이 대결하는 구도다. 좌우에는 멕시코시티를 상징하는 다양한 동식물과 랜드마크, 역사와 문화의 상징들을 담았다.
몬테레이는 멕시코 동북부의 심장부이며 멕시코 제2의 경제 도시다. 쿠에만체의 멕시코 시티 호스트 포스터 3부작 중 하나로 다른 멕시코 도시 포스터와 같은 형식이다. 중앙에는 몬테레이의 최신식 경기장 에스타디오 BBVA의 물결 모양 지붕이 눈에 띈다. 맨 위에는 몬테레이의 상징인 세로 데 라 시야(Cerro de la Silla) 산의 독특한 실루엣이 표현되어 있다. 그밖에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음악가, 콘트라베이스를 켜는 연주가, 바비큐 모닥불, 매와 홍관조 등 몬테레이의 자연과 문화, 산업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복잡하게 섞여 있다.
누구나 한 눈에 알 수 있는 자유의 여신상 횃불과 손이 중앙에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다. 횃불 안에는 축구공을 그려 넣어 횃불이 월드컵 축구공으로 승화되는 모습을 표현했다. 손과 횃불 배경에는 NY와 NU라는 커다란 글자가 있는데, 이것은 뉴욕과 뉴저지를 뜻한다. 글자 뒤의 파란색 바탕에는 뉴욕과 뉴저지를 상징하는 다양한 그림들이 숨어 있다. 꽃 패턴은 뉴저지의 별명인 ‘가든 스테이트’를, 주사위는 뉴저지의 카지노 도시 애틀랜틱시티를, 자유의 여신상 얼굴 옆 피자 조각은 뉴욕의 음식문화를 암시한다.
위로 튀어오르는 세 개의 축구공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다양한 필라델피아의 역사와 문화적 상징을 표현했다. 영화 <록키>로 유명해진 필라델피아 미술관과 계단이 보인다. 록키의 계단으로 유명한 이곳은 필라델피아의 도전정신을 상징한다. 그 밑부분에는 동양식 건물이 보이는데, 이는 차이나타운의 입구로서 이 오래된 도시의 다문화를 상징한다. 주요 컬러는 필라델피아 주 깃발의 파란색과 노란색이다.
도시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복잡하게 나열한 다른 포스터들과 달리 샌프란시스코 포스터는 두 개의 강력한 랜드마크로 요약했다. 하나는 붉은색의 골든 게이트 브리지이고, 다른 하나는 오클랜드-베이 브리지다. 두 개의 다리가 마치 날아오는 공을 향해 경쟁하듯 뛰어오르는 형상이다. 두 개의 다리, 또는 선수는 리바이스 스타디움 안에 있다. 스타디움 뒤로는 캘리포니아의 레드우드 숲을 상징하고, 밑부분에 묘사된 구름 모양의 흰색은 샌프란시스코만을 뒤덮는 안개를 표현한 것이다.
시애틀 지역의 풍경과 문화를 바다 생태계와 축구에 빗대어 묘사했다. 배경은 에메랄드 빛의 엘리엇 만이고, 그 바다 위에는 커다란 흑동고래(또는 범고래)의 꼬리가 힘차게 물을 차올리며 축구공을 멀리 걷어내는 장면이 포착되어 있다. 고래는 시애틀을 연고로 하는 MLS(메이저리그사커) 팀 시애틀 사운더스의 상징과도 맞닿아 있어 지역 축구 문화와 연계된다. 꼬리 위에는 워싱턴주의 성산인 레이니어 산이 웅장하게 솟아 있고, 그 밑으로 도시 스카이라인이 펼쳐져 있다.
토론토 포스터는 다른 포스터들과 달리 완전히 복고풍으로 디자인되었다. 20세기 전반기 입체파와 모더니즘에서 영향을 받은 아르데코 스타일로 디자인되었는데, 그로 인해 1920-30년대를 연상시킨다. 볼을 차고 달려오고 있는 축구 선수가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파편화되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아르데코풍이다. 선수의 바지와 가슴에는 캐나다를 상징하는 붉은색 단풍 모양이 그려져 있다. 기하학적인 사각형들은 토론토의 직교형 거리 구조와 전통문화인 퀼트를 상징한다. 토론토의 문화를 상징하는 표현이 직접적이지 않고 은유적인 것이 특징이다.
16개 시티 호스트 포스터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절제된 디자인이다. 흰 여백이 굉장히 많고 간결하게 구성했다. 중심에는 밴쿠버의 바다를 가르는 범고래 한 마리가 도시의 다리와 스카이라인, 산, 갈매기, 그리고 축구공을 짊어지고 있는 것 같다. 절제된 색채와 여백이 깨끗한 밴쿠버의 도시 이미지를 암시한다. 밴쿠버라는 도시가 자연의 품 안에서 모두를 환영하는 축구 도시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월드컵 포스터는 주최국의 국가 정체성과 그 시대의 디자인 양식, 그리고 주최국이 대회를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 FIFA가 추구하는 정신, 시대적 열망 등이 집약되어 있다. 역대 포스터 중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을 소개한다.
우루과이 월드컵은 최초의 대회로서 세계 최초의 축구 국가대표팀간의 국제 대회가 개최됨을 공식적으로 알리고 축하하는 데 있었다. 간결하게 표현된 축구선수 이미지를 통해 축구의 열정, 에너지, 초인적인 능력을 상징화했다. 1920-30년대에 유행한 아르데코풍으로 디자인되었다.
193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된 브라질 대회로 12년 만에 재개되었다. 다시 시작된 월드컵의 의미를 조명했다. 축구공을 모는 거대한 다리의 축구 양말이 단일한 색이 아니라 참가국 국기들로 채워졌다. 이는 전쟁 뒤 축구의 세계적 확장과 국제적인 화합을 표현한 것이다.
1966년에는 처음으로 마스코트가 도입되었다. ‘월드컵 윌리(World Cup Willie)’라는 이 마스코트의 등장은 월드컵이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 마케팅과 흥행 붐 조성의 대상으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영국을 상징하는 사자 캐릭터 윌리는 대형 스포츠 대회를 대표하는 최초의 마스코트였다. 이는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최초로 도입된 올림픽 마스코트 발디(Waldi)의 개발에도 영향을 주었다.
디자인적인 전통에서 벗어나 회화적인 표현과 역동성을 강조한 혁신적인 포스터다. 기존의 포스터들은 구성적이고 간결하고 절제된 디자인이 대세였다. 하지만 이 포스터는 표현주의적인 거친 붓터치, 강렬한 색채로 회화적인 특징을 지닌다.
예술가가 참여한 최초의 월드컵 포스터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호안 미로가 89세라는 고령의 나이에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어린 아이가 낙서한 듯한 단순한 형태들, 강렬한 원색, 거친 필치가 특징이다. 추상적인 형태는 축구선수들의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동작을 암시한다.
이탈리아의 역사적 유산과 축구의 세계적인 통합을 갈망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로마의 콜로세움 사진을 흑백으로 처리했는데, 최초로 사진을 사용한 포스터다. 검투사 경기가 펼쳐졌던 경기장에는 축구장이 깔리고, 주변에는 참가국의 국기를 관중처럼 배치했다. 녹색의 축구장이 흑백의 콜로세움과 강렬한 대비로 다가온다.
최초로 동아시아에서 개최된 월드컵이자 최초로 두 개 국가가 개최한 월드컵이다. 이에 따라 동아시아의 문화를 암시하는 역동적인 붓터치로 경기장을 묘사했다. 또한 두 나라의 화합과 협력을 강조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열린 최초의 월드컵으로서 아프리카 자긍심을 표현했다. 축구공을 보고 있는 흑인의 옆모습은 아프리카 대륙을 형상화하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넘어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대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카타르 월드컵은 아랍권에서 개최된 최초의 월드컵이다. 카타르의 전통적인 머리 장식인 구트라(ghutra)와 이갈(Igal)을 하늘 높이 들고 있는 모습을 포착했다. 아랍어로 ‘하이야’라는 글자를 캘리그래피 형식으로 썼다. “자, 가자!”라는 뜻으로 전세계인들을 카타르로 초청하는 환영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랍 문화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