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승연
매일경제신문사 주간지
고속도로 휴게소를 찾은 어느 날 풍경이다. 휴게소 식당에서 키오스크(무인 주문 기계)로 식사 주문을 하고, 코너에서 알람이 울리면 식판을 가져간다. 커피를 사 마시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던 중 로봇이 제조하는 카페를 발견했다. 주문하는 즉시 로봇이 제조에 들어가는데,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얼음컵에 넣어지는 모습까지 한눈에 보인다. 완료된 커피는 영수증 속 바코드를 인식하니 고객의 손에 빠르게 전해진다. 이날 내가 휴게소에서 만난 직원은 주방 요리사뿐이었다.
현대사회에 비대면, 특히 무인(無人) 시스템은 세밀하게 녹아 드는 중이다. 직원의 도움 없이 고객이 스스로 상품을 고르고, 키오스크로 결제까지 가능한 매장 형태인 무인점포는 ‘스마트 상점’으로도 불리며 주요 상권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 무인점포 수는 6,323개에 다다랐으며(*아이스크림 할인점 > 세탁소 > 스터디카페 순), 무인점포 인지자 및 이용자들 역시 2021년(71.9%)에 비해 2023년(79.4%)엔 더욱 증가한 추세다(출처: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2023).
자료: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2023
자료: 삼성카드 2025
삼성카드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 초까지 전국 무인점포는 4배(31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가맹점이 8%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폭발적 증가세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2021년 팬데믹 영향으로 외식이 어려워지며 밀키트 업종 비중이 크게 증가하였으나, 이후에는 밀키트 업종이 가장 크게 감소했다. 한편, 사진관 업종은 아날로그 트렌드에 따라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무인점포의 급부상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산업과 유통업계의 구조적 전환과도 맞물려 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의 발전은 소비자와 판매자 간의 접점을 줄이는 비대면 소비를 일상화시켰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이러한 흐름에 가속도를 더하며, 무인점포에 대한 선호도를 높였다. 무인점포에서 소비자가 빠르게 구매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일상에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보편화된 가게로 여겨지며, 유입되는 신규 고객 수도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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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에서는 ‘속도’ 전쟁이 경쟁력이 됐다. 빠르고 간편한 구매 경험을 원하는 소비자에게 무인 시스템은 이러한 니즈를 충족시켰다. 무인점포는 ‘시간 경쟁력’에 있어 적절한 아이템이다. 공급(소상공인) 입장에선 인건비를 아낄 수 있고, 협소한 규모의 공간을 활용하거나, 심야시간 운영이 가능하다. 수요(소비자) 입장에선 장소와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점포 이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는다.
특히 연령대가 낮을수록 무인점포의 ‘편리성’에 있어 높은 만족도를 보인다. 지난 2023년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발표한 자료(참고: 2023년 무인점포 방문 및 이용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무인점포 이용 후 ‘편리성’(75.9%, 동의율)과, ‘비대면 응대’(60.3%) 측면에서 만족도가 높게 나타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무인점포를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거나’(45.4%, 중복응답), ‘시간 제약이 없는’(43.1%) 매장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저연령층의 경우 카페, 밀키트 판매점, 마트 등 다양한 무인점포의 이용 빈도가 높다는 특징을 보였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비대면에 익숙하고, 디지털 기기를 쉽게 사용하는 이들 세대가 고연령층 대비 무인점포의 이용에 높은 호감도를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20대 68.4%, 30대 53.2%, 40대 48.4%, 50대 42.4%). 타인과의 소통보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저연령층의 경우 무인점포의 시간 제약 없는 쇼핑 시스템과 비대면 응대는 만족감을 높이는 요소인 셈이다. 이 밖에도 1인 가구가 증가하며 소량 구매나 간편식 선호도가 높아진 것도 무인점포의 인기에 한몫했다. 아이스크림, 펫 상품, 밀키트, 라면 판매점, 코인 세탁소, 건강 식품, 과일 가게 등 무인점포 종류 중 1인 가구에 적합한 품목 등이 주를 이루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시내에 위치한 무인 탁구장 이용 방법과 키오스크 ⓒ 이승연
GS칼텍스 여수2공장에 컨테이너형 무인 편의점으로 첫 선보인 GS25 M여수칼텍스점 ⓒ GS칼텍스
무인점포의 사업지속성이 주목받기 시작하자, 매장별 무인 시스템의 특징 및 운영 방식에 변화를 주고 있다. 무인점포 전환이 아니더라도, 기존 유인점포의 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디지털 자동화 기술(키오스크, 테이블오더, 서빙로봇) 등을 활용하는 것처럼, 고객의 편의를 높이고 매장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전략 등을 내세웠다.
무인점포는 운영방식의 변화에 따라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1세대 단순 무인 판매형(아이스크림 할인점, 문구점, 편의점, 사진관 등), 2세대는 AI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운영형(빨래방, 태닝샵, 헬스장 등), 3세대는 유인, 무인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경험형(무인 카페, 스마트 슈퍼, 스터디카페 등), 4세대는 빅데이터 기반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초개인화 형태(무인 콘텐츠 체험, 무인 테니스장)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은 점포의 입지, 운영 목적, 타깃 고객층 등 주변 여건과 이용객의 특성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21년 이마트24는 심야시간대(23~06시)는 셀프 계산 시스템을 운영, 심야시간 외에는 일반 매장과 동일하게 유인으로 운영되는 ‘하이브리드형 매장’을 확대했다. 가맹점 추가 매출 증대와 함께 고객 편의를 높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런가 하면 GS25의 경우 지난 2022년 컨테이너형 무인 편의점을 GS칼텍스 여수2공장 내 부지에 오픈했다. 해당 점포의 경우 QR 및 신용 카드 등을 활용하는 △출입 인증 솔루션 △셀프 결제 솔루션 등 무인점포 전용 솔루션을 적용하고, GS25 무인점 전용 앱 ‘무인25’를 통해 출입 제어를 활용했다. 이를 통해 시설 안전 및 방범, 화재 예방 등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해 점포 운영의 편의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최근엔 주요 유통 브랜드나 가맹점에서도 무인 시스템 도입을 점차 늘리는 추세다. 지난 5월, 스타벅스가 한국과 일본에서 키오스크를 도입한다는 소식이 유통가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요즘 카페에선 키오스크 활용이 익숙하지만, 그동안 고객과 직접 소통하는 것을 중점으로 둔 스타벅스였기 때문에 키오스크 도입 자체가 이슈화된 것이다. 이에 관해 스타벅스 코리아는 외국인 고객의 소통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전문가들은 스타벅스 내 키오스크 시범 도입이 매장 효율성을 증대할 것이라 예측했다. 스타벅스 키오스크는 서울 명동을 비롯해 제주도 등지의 관광 상권과 오피스 상권 10개 안팎의 매장에 시범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완전 무인매장으로 운영되는 이마트24 스마트 코엑스점 전경 ⓒ 이마트24
무인점포를 이용할 때 매장 이용률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관건은 바로 ‘접근성’이다. 동네, 회사 등과 가까울수록 이용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반면, 동네가 아니어도 사람들이 찾게 하는 ‘특별한 무인점포’도 있다. 마케팅 요소를 접목한 특수한 무인점포들은 소비자로 하여금 발품 팔아 찾게 하는 힘이 있다. 특히 체험을 중시하고, 무인점포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2030세대에게 제격이다.
최근 무인점포 형태의 독립서점들의 경우 일부 2030세대 사이에서 주목받는 필수 방문 코스다. 관악구 ‘회전문서재’, 용산구 ‘비서재’, 신당동 ‘오드쓰북’, 종로 ‘조이엔영’ 등 인기 독립서점은 ‘무인공간’ 자체를 상품으로서 활용하기도 한다. 서점이라는 공간을 시간대별로 개인이 대여하는 방식인데, 나 홀로 조용히 책을 고르고 읽고 싶은 이들에게 또는 독서모임 장소나, 강연, 문화 공간 등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특화돼 있는 서비스다.
그런가 하면 인기 캐릭터와 컬래버한 팝업스토어 형태의 무인매장이 등장하기도 했다. 2024년 2월 코레일유통은 신도림역 상행을 타는 곳에 인기 캐릭터 벨리곰을 테마로 한 무인점포 ‘셀프스토리웨이’를 오픈했다. 셀프스토리웨이 매장 내부는 벨리곰 캐릭터로 디자인하고, 과자와 벨리곰 굿즈를 판매하는 자판기, 로봇카페 등을 설치해 신도림역 벨리곰 테마공간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한정판 제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열차를 기다리는 잠깐 사이, 인기 캐릭터를 활용한 무인매장이 이용객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 것이다.
신도림역 내 벨리곰 테마의 무인점포 ⓒ 코레일유통
캠퍼스 돈키 오사카 덴도오점 ⓒ 돈키호테
일본의 유명 잡화점 브랜드 ‘돈키호테’는 지난 7월 오사카 전기통신대학 캠퍼스 내에 무인점포 ‘캠퍼스 돈키’를 오픈했다. 약 5평 남짓한 매장에선 도시락, 라면, 문구류 등 다양한 생필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용자는 LINE(라인) 앱을 통해 QR코드를 스캔해 입장하고, ‘저스트 워크 아웃’ 기술을 통해 사전 등록된 신용카드 또는 페이 시스템으로 자동결제를 진행한다. 돈키호테는 2025년 11월 두 번째 매장을 오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외에서도 몇 년 새 무인 시스템은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세계에서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 중인 국가로, 인력난이 심해지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무인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세븐일레븐, 패밀리마트 등 주요 편의점 체인에서도 셀프 계산대와 자동화 기술을 접목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고령화와 함께 인건비 상승, 비대면 소비 확산, 자동화 기술 발전이 맞물리며 무인점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특히 2030세대 청년 창업자들은 초기 투자 비용과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인점포 창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업종 또한 다양화되는 추세다.
향후에는 고객 편의성 제고와 함께, 동종 업계 내 경쟁 심화에 따른 차별화 전략 마련, 그리고 보안 강화 및 디지털 소외 문제를 포함한 법적·사회적 규제의 정비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인점포는 운영 효율성과 소비자 만족도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며, 미래 유통, 서비스 산업의 지속가능한 모델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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