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새 정체성과 랜드마크 만드는
공간 리브랜딩

글.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

5호선 종로3가역은 종로 큰길에서 꽤 들어가 익선동과 돈의동, 낙원동이 인접한 곳에 있다. 이곳은 종로구에서도 북촌만큼이나 한옥이 많아서 좁다란 골목길이 남아 있다. 그 골목길을 따라 작은 식당과 가게들이 밀집해 있어서 예스러움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만큼 국내외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이곳에는 1979년에 개장해 지난해까지 44년 동안 영업한 종로여관이 있다. 이 여관은 지난해 ‘새서울’이라는 새로운 엔터테인먼트와 식음료 공간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1, 2층은 오락실, 3, 4층은 음주가무 용도의 카페와 라운지바, 5, 6층은 야외에서 식음료를 즐길 수 있는 루프탑이 있다. 내부는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인테리어로 디자인했다. 하지만 외부는 44년 동안 여관으로 썼던 그 건물 그대로다. 외벽의 마감재조차 바꾸지 않아 밖에서 보면 정말 1970~80년대 구닥다리 건물이다. 간판은 바꿨다.

이처럼 그 장소의 역사성을 보존하면서 건물에 완전히 새로운 프로그램을 입히고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새로운 고객과 방문자를 유치하는 것은 도시 공간 리브랜딩의 전형적인 사례다. 지역에 매력을 불어넣어 대중을 끌어모으는 공간 리브랜딩 사례를 살펴본다.

종로여관을 개조해 엔터테인먼트&식음료 공간으로 탈바꿈한 새서울 ©김신

중장년에겐 노스탤지어를, 젊은 세대에겐 새로움을
주어진 환경의 역사와 자원을 활용하다

종로여관을 새서울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에서 의문이 드는 것 중 하나는 왜 세련되지 않은 낡은 건물을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짓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오랫동안 축적된 문화적 가치를 보존함으로써 그곳을 찾은 이들로 하여금 역사성과 지역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새서울의 마감재는 옅은 핑크색 타일로 덮여 있는데, 이런 마감재는 오늘날 촌스러워서 쓰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한옥이 밀집한 구도심을 찾는 외부인들이 기대하는 것은 바로 그런 낡음과 낯섦이다. 빈티지와 복고풍은 중장년 세대에게는 노스탤지어를,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움을 전달한다. 1층에 들어서면 만날 수 있는 옛날 전자오락실 같은 것이다. 오래 되었지만 가끔 갖고 놀고 싶은 것이다. 이 공간의 로고가 서툰 옛날 만화풍이고, ‘새서울올드앤뉴헤리티지’라고 표기한 것은 바로 미학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유산을 강조한 것이다.

종로구 통의동의 보안여관도 그런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보안여관은 일제강점기 때 태어난 여관으로 2004년에 수명을 다한 뒤 방치되었다. 2007년에 최성우 대표가 인수해 갤러리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름도 보안여관 그대로이고 간판도 그대로 쓰고 있다. 이 오래된 간판은 사진으로 많이 찍히고 퍼져나가 말 그대로 이 갤러리의 간판이 되었다. 하찮은 명함판 사진조차 오래되면 가치가 생기듯이 역사가 오래되면 뭐든지 리브랜딩의 자원이 될 수 있다. 도시 공간 리브랜딩에서 오래된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재활용하는 두 번째 이유는 경제적으로 이익이라는 점이다.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데는 큰 비용이 든다. 그것은 시설 이용료를 높이거나 순이익으로 돌아서는 시기를 늦출 것이다.

종로구 통의동의 보안여관은 현재 갤러리로 운영되고 있다. ©김신

보안여관 내부 전시공간. 천장과 벽을 걷어내 낡은 부재를 노출시켜 일부러 역사성을 드러내고 있다. 전시장 창문 밖으로는 경복궁의 담벼락이 보인다. ©김신

역사와 문화는 지니되, 정체성은 전환
보존하되 새롭게 하기

하지만 리브랜딩에서는 정체성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는 이미 그런 고전적인 사례들이 많이 있다.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인 사례는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이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은 원래 1900년에 완공한 기차역이었다. 하지만 플랫폼이 짧아 길어진 기차를 수용할 수 없어 1939년까지 운영되었고, 이후 우편센터, 영화세트장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방치되다가 1970년대에 철거하고 호텔을 짓고자 했다. 하지만 당시 문화부 장관이 이 건물을 문화재로 등록한 뒤 미술관으로 개조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 미술관에 들어서면 과거 기차역이었을 때부터 사용했던 거대한 시계가 그대로 있어 유구한 역사적 유산을 자랑한다. 선로가 지나가는 자리는 복도가 되었으며, 양옆으로 있던 플랫폼 위로는 전시장이 마련되었다. 19세기에는 철이 주로 기차역이나 공장 같은 공공건물에 쓰였고, 외부는 석재로 마감되었다. 이런 19세기 건축의 특성은 이 미술관이 주로 인상파와 같은 19세기 미술을 콜렉션하고 있는 점과 일치한다.

오르세 미술관은 1900년에 완공된 기차역을 개조했다. ⓒDXR

기차역은 물론 다양한 용도로 쓰였던 건물의 역사가 이 미술관의 스토리가 되어 미술관의 가치를 더한다. 유서 깊은 건물의 스토리와 탁월한 컬렉션으로 인해 오르세 미술관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은 방문객이 찾으며, 프랑스에서는 루브르 박물관 다음이다.

유럽의 비슷한 사례로 유럽 최대의 탄광 단지를 박물관으로 개조한 독일 에센의 졸페라인이 있다. 졸페라인은 탄광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탄광이라는 명성을 얻었고,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에 따라 21세기부터 탄광박물관, 디자인박물관, 갤러리, 공연장, 작가 스튜디오 등이 지속적으로 들어서며 현재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들 문화공간으로 리브랜딩된 건물 또는 지역의 공통점은 수명을 다했지만, 역사성과 문화성을 지닌 공간이면서 그 물리적 환경 자체가 현대의 건축물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뿐더러 여전히 랜드마크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졸페라인의 거대한 금속 탑은 에센시의 상징이다.

폐탄광 공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꾼 독일 에센의 졸페라인. ⓒAvda

문화공간으로 바꿔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승화
산업시설의 매력을 극대화하다

이런 리브랜딩 사례들은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역할도 수행한다. 졸페라인의 경우 연간 25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한다. 도시 재생을 위해 수명을 다한 산업시설을 철거하지 않고 문화공간으로 바꾸는 리브랜딩 작업은 한국에서도 21세기에 들어와 전국에서 지속적으로 개발되어 왔다.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부천아트벙커B39가 있다.

부천아트벙커는 원래 쓰레기 소각장이었으나 도시가 확장되면서 주변에 아파트가 건설되고 시와 주민 사이 갈등의 원인이 되어 2010년 문을 닫았다. 소각장을 철거하는 비용만도 70억이 드는 큰 사업이어서 2014년에 폐산업시설지원 공모사업지로 선정돼 국내 최초의 폐소각장 문화재생시설로 거듭났다. 전시·공연·교육 기능이 가능한 융복합문화시설이지만, 이제는 쓸모없는 소각장의 몇몇 시설들을 보존하고, 육중하고 거친 건물의 질감을 그대로 살려 그 자체가 관람객에게 대단히 드라마틱하고 미적인 체험을 하게 해준다. 이곳은 2018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을 수상했고, 산업시설의 독특하고 고유한 특성으로 인해 영화 <승리호>, <길복순>, BTS 패션 영상의 촬영장소로도 쓰였다. BTS 촬영지는 전 세계 팬들의 순례지가 되기도 한다. 이런 성과로 부천아트벙커는 지난해 문화관광체육부가 추진하는 ‘로컬 100’에 선정되었다. 로컬 100은 지역문화자원에 기반을 둔 명소, 콘텐츠, 명인을 선정해 2년간 국내외에 집중 홍보하는 것이다.

폐소각장으로 융복합문화시설으로 개조한 부천아트벙커B39. ⓒ김용관

원래 공장의 거대한 굴뚝이나 수많은 배관, 덕트, 압도적인 철제 구조물 등은 산업혁명시대부터 예술가들을 매혹시켜 왔다. 운행되는 동안은 위험해서 접근할 수 없지만, 수명이 다했을 때는 미술관의 예술품만큼이나 매력적인 것이다. 따라서 안전이 확보된다면 이런 산업 시설물은 자연환경만큼이나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예술작품과도 잘 어울리고 공연무대로도 손색이 없다. 이를 활용하는 것이 최근 지역 재생 프로젝트의 트렌드다. 서울에서 산업시설의 외관은 그대로 둔 채 소프트웨어를 새롭게 대체함으로써 그 장소는 물론 주변 환경까지 문화적 핫플레이스로 바꾼 대표적인 리브랜딩 사례는 성수동의 대림창고와 어니언이다.

성동구 성수동2가는 인쇄소, 자동차 공업사, 수제화 업체 등 준공업 지역이었다. 하지만 오래된 공장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문을 닫았고 건물들은 비워지기 시작했다. 정미소로 지어졌지만, 창고로 용도 변경되었던 대림창고도 마찬가지 운명을 맞이했다. 2011년부터 행사장으로 대여되다가 2015년에 갤러리 겸 카페로 탈바꿈했다. 1970년대에 지어진 지금의 어니언은 식당, 정비소, 공장, 가정집 등 다양한 용도로 변경되다가 2016년 베이커리 카페가 되었다.

대림창고와 어니언, 두 곳은 성수동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작은 랜드마크가 된 것이다. 두 곳 다 붉은 벽돌로 외관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다. 거칠고 투박한 붉은 벽돌의 질감, 결코 세련되다고 할 수 없는 건물의 형태는 오랜 세월 산업현장으로서 기능을 다해온 흔적이 느껴진다. 그것을 굳이 예쁘게 다듬지 않고 그대로 둔 채 내부만 리노베이션 한 것이다. 이 두 곳의 문 앞을 가면,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성수동에 오는 사람들은 이 고유한 장소성과 빈티지를 한껏 느끼고자 하는 것이다.

리브랜딩은 리뉴얼과 다르다.
리뉴얼은 개선과 업그레이드에 중점을 두지만,
리브랜딩은 대상의 정체성과 인식을 바꾸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글로벌 기업의 로고는 끊임없이 리뉴얼된다.

다양한 산업시설로 쓰이던 낡은 건물을 개조해 베이커리 카페로 태어난 어니언. 대림창고와 함께 성수동의 상징적인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김신

대상의 정체성과 인식을 바꾸다
리뉴얼을 넘어선 리브랜딩

리브랜딩은 리뉴얼과 다르다. 리뉴얼은 개선과 업그레이드에 중점을 두지만, 리브랜딩은 대상의 정체성과 인식을 바꾸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글로벌 기업의 로고는 끊임없이 리뉴얼된다. 코카콜라, 3M, IBM, 애플의 로고는 시대와 기술의 변화에 발맞춰 조금씩 변했다. 한국의 글로벌 기업인 삼성과 엘지도 마찬가지다. 로고가 변했다고 기업의 정체성까지 변한 건 아니다.

지난해 도쿄돔시티가 로고를 리뉴얼했다. 도쿄돔시티는 돔 구장뿐만 아니라 놀이공원, 스파, 호텔, 극장 등을 포함한 종합 엔터테인먼트 브랜드다. 이번 프로젝트는 로고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로고가 적용되는 콘텐츠에 맞게 다양하게 변주된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기본형 디자인이 있고, 장체, 평체, 볼드, 라이트 등의 변형이 있고 색채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이런 리뉴얼은 미디어 기술의 변화, 그리고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대한 관념의 변화를 따른다. 21세기에 들어와 획일화되고 고정된 로고에 대한 도전이 일어났고, 이런 트렌드가 반영된 것이다.

도쿄돔시티의 리뉴얼된 기본형 로고(사진 위쪽). 도쿄돔시티의 로고는 굵기와 색상을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다(사진 아래쪽). ⓒTOKYO DOME CITY

하지만 트위터를 ‘X’로 바꾼 것은 리브랜딩이다. 트위터의 아이덴티티는 파란색 새였다. ‘짹짹(tweet)’거리면서 이야기를 사방에 전달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2022년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 뒤 트위터를 단순히 텍스트 기반의 SNS 메신저에서 금융과 쇼핑을 결합한 슈퍼 앱으로 혁신하고자 했다. 정체성이 바뀌니 이름과 이미지가 모두 바뀐 것이다.

지역의 공간을 리브랜딩하여 랜드마크화하는 작업도 이처럼 접근한다. 뉴욕의 버려진 고가 철도를 조경, 도시 디자인, 생태학 등 여러 전문 영역으로 해석해 공원으로 탈바꿈한 하이랜드 파크도 말하자면 리브랜딩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철도가 공원이 되었으니 상전벽해가 되었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쓰지 않은 기존의 고가도로와 그 위에 자라난 식물들을 버리지 않고 활용해 공원화한 것이다. 이곳은 연간 800만 명의 사람이 방문할 정도로 지역 명소가 되었다.

서울시는 하이라인 파크를 벤치마킹해 노후화로 인해 자동차 도로로는 안전문제가 제기된 서울역 고가도로를 ‘서울로7017’이라는 이름으로 공원화했다. 폐쇄된 경의선 철길을 공원화한 경의선숲길 역시 수명 다한 도시의 시설을 리브랜딩해 시민의 사랑을 받는 장소이자 지역 랜드마크로 바꾼 대표적인 사례다.

뉴욕 하이라인은 수명 다한 고가 철로를 공중 공원으로 개조했다. ⓒDansnguyen

폐쇄된 경의선 철길을 공원화한 경의선숲길 역시 수명 다한 도시의 시설을 리브랜딩해 시민의 사랑을 받는 장소이자 지역 랜드마크로 바꾼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로7017은 안전문제가 제기된 고가도로를 시민의 산책로로 브랜드화했다. ⓒChristian Bolz

경의선숲길은 사용하지 않는 철길을 산책로와 공원으로 만들었다. ⓒChristian Bolz

수명을 다한 건물이 미래 비전을 가질 때
랜드마크로 변모된 사례들의 공통점

이상 살펴본 것처럼 도시가 변화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수명을 다한 건물과 시설물을 활용해 그 지역의 랜드마크로 변모시킨 이런 사례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수명 다한 건물과 시설물의 원래 기능을 다시 살려내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다른 기능과 프로그램을 갖는 새로운 브랜드로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둘째, 기존의 장소가 갖고 있는 물리적인 실체는 철거가 아닌 보존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낡은 것은 다음 세대와 외국인들에게는 새로운 것이고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브랜드 스토리텔링에 유리하다. 스토리를 갖는 장소는 역사적 유산이라는 선물을 받는 것이다.

셋째, 그 지역이 갖는 고유한 역사성과 정체성이라는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새서울이 4~6층의 벽을 허물고 내부를 외부로 개방함으로써 익선동이라는 한옥 지역의 풍경을 끌어들인 것이 좋은 사례다. 기존의 건물이나 시설이 역사성을 고려할 때 다른 곳과 차별화가 이루어진다.

끝으로 새로운 명소는 미래 비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로7017은 독립된 산책로가 아니라 고가도로 주변 건물들과 연계되어 다양한 이벤트가 이루어지면서 주변 상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때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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