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
광고 멜로디의 부활

글. 정서영

동아일보 기자

익숙한 광고 멜로디가 부활했다. 1980~90년대 TV에서 자주 들리던 CM송이 리믹스되며 인기를 끌고 있는 것.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강조하면서, 요즘 세대들에겐 신선함을 전달하는 CM송. 식품·유통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추억의 CM송과 뉴진스의 만남
‘코.카.콜.라.맛.있.다. 맛있으면 또 먹지’

80~90년대 생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구전 멜로디가 다시 소환됐다. 지난해 4월 인기 아이돌 뉴진스가 코카콜라와 협업해 발매한 CM송 ‘Zero’에 실리면서부터다. 뉴진스와의 협업으로 눈길을 끈 CM송은 ‘코카콜라 맛있다’를 리믹스한 파트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실제 유튜브 영상을 확인해보면 해당 부분은 ‘가장 많이 본 파트’로 지정돼 있다.

한때 주춤했던 CM송이 식품·유통업계를 중심으로 부활하고 있다. 새로운 노래를 만들기도 하지만, 과거 인기를 끌었던 추억의 멜로디를 리믹스하는 방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주요 소비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를 대상으로 ‘추억 마케팅’을 전개할 수 있을뿐더러 오랜 역사를 가진 CM송을 불러옴으로써 기업과 브랜드가 가진 오랜 역사와 헤리티지를 강조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코카콜라코리아 유튜브

지코의 새우깡, 김아영의 롯데껌

주로 과거의 멜로디를 유명 가수와 협업해 재가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농심은 ‘손이 가요 손이 가’로 유명한 새우깡 CM송을 가수 지코와 협업해 리메이크했다. 이마트 역시 지난해 3월 이마트 30주년을 맞아 ‘해피해피 이마트’ 구절로 유명한 CM송을 다시 제작했다. 윤하가 부른 모던록 버전, 적재가 부른 재즈 버전, 베하필하모닉이 연주한 오케스트라 버전 등 총 5개 버전을 선보이며 과거 CM송을 기억하던 사람들에게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과거 유행했던 CM송을 그대로 쓰기도 한다. 최근 롯데웰푸드는 자사 인기 껌 3종(쥬시후레쉬, 스피아민트, 후레쉬민트)을 리메이크하면서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한 복고 디자인을 내세웠다. 광고 역시 1980년대 감성을 살린 화면과 디자인으로 제작했다. 최근 쿠팡플레이 예능 <SNL 코리아>에서 1990년대 서울 사투리 콩트로 인기를 끈 배우 김아영을 섭외해 복고 콘셉트를 확고히 했다. 광고 영상 말미에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 구절로 유명한 롯데껌 CM송을 오마주해, 그 시절 CM송과 롯데껌을 기억하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여러모로 복고 CM송이 대세가 됐다.

©농심

©롯데웰푸드

숏폼·복고 바람 타고 CM송 인기

추억 속 CM송 부활의 원인을 살펴보려면 우선 CM송 인기의 원인부터 짚어야 한다. 최근 부는 CM송 인기는 숏폼 미디어 부상과 맞닿아 있다. 유튜브 쇼츠, 틱톡 등 영상 시간이 30초 내외의 숏폼이 짧은 시간 내 소비자들에게 각인을 줘야 하는 CM송의 장점과 부합하는 것. 기업 입장에서는 홍보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CM송을 쓰기 좋은 환경이 된 셈이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숏폼에 활용하기 좋도록 같은 음원도 15초, 30초 버전을 함께 제작해 공개한다”고 말했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이로 인한 각인 효과도 CM송만의 장점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따라부르기 쉬운 멜로디 때문에 기업이 브랜드나 가치에 대해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반복적으로 흥얼거리며 무의식에 영향을 주는 게 CM송의 특징”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MZ세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 마케팅 효과도 함께 노렸다. 어린 시절 TV 광고를 통해 멜로디를 접한 2030세대가 향수를 느끼며 자연스레 브랜드를 찾는 효과를 유도한 것. 특히 최근에는 문화계·마케팅계를 중심으로 부는 복고 바람에 ‘그때 그 시절’ 전략이 여느 때보다도 효과적이다.

브랜드가 가진 헤리티지를 강조해 빈티지,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조할 수 있는 점도 있다. 추억의 CM송 마케팅의 예시로 든 새우깡, 이마트, 쥬시후레시 등은 모두 20~30년이 넘은 기업·브랜드지만 일상에서 너무 익숙해진 탓에 되레 MZ세대에겐 기억에 남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 CM송을 통해 과거 추억을 불러일으키면서 브랜드의 역사를 강조하고, 은연중에 ‘오랫동안 살아남은 브랜드다’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특히 롯데웰푸드의 경우 그룹의 모태가 된 껌 제품을 다시금 강조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한국 6위 재벌로 거듭난 롯데의 근원을 다시금 강조했다는 평도 받는다.

추억의 CM송 인기는 계속될 것

이 같은 추억 속 CM송 마케팅은 당분간 유행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주요 타깃층인 MZ세대의 소비력이 높아지는 점이 크다. 2021년 통계청이 발표한 ‘국민이전계정’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은 27살부터 소득이 지출을 앞지르기 시작한다. 흑자 구간은 43세에 정점을 찍고 61살부터는 적자로 돌아선다. 2024년 기준으로 만 27세에 들어서는 1997년생부터 전후 몇 년 세대가 향후 한국의 핵심 소비계층이 된다는 의미다.

자료 : 통계청

소위 ‘추억 마케팅’이 통하는 이들 세대는 저출산이 본격적으로 다가오기 전 마지막 베이비붐 세대기도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대 출생아는 1991년 70만 9,000여 명 대를 기록한 이후 1995년(약 71만 5,000명)까지 70만 명 대를 유지했다. 이후 감소세가 이어지며 2008년에는 약 46만 6,000명, 2022년에는 24만 9,000여 명까지 떨어졌다. 인구가 많은 세대가 소비력을 갖추기 시작하니 기업 입장에서도 이들을 겨냥한 마케팅이 우위 전략인 셈이다.

‘발굴되기 쉬운 추억’도 주목할 만한 요소다. 유튜브 등 매체의 발달로 과거 이들 세대의 기억 속에서만 남았던 영상, 음악 등이 쉽게 재조명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 드라마 ‘슬픈 연가’에서 모자를 눌러쓰며 ‘소라게’라는 별명을 얻은 배우 권상우 씨의 밈 화(化), 과거 우스꽝스러운 가사로 놀림감이 됐던 보이그룹 제국의 아이들의 데뷔곡 ‘마젤토브’가 SBS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에서 ‘숨듣명(숨어서 듣는 명곡: 노래는 좋은데 가사가 이상해서 혼자 듣는 노래를 의미)’으로 발굴된 점이 대표적이다. 학창시절을 디지털 시대의 초입과 함께한 MZ세대에게 추억은 언제든지 발굴될 수 있는 무언가다.

프로스포츠에 어울리는 추억의 멜로디

우리나라 프로스포츠의 역사가 진행되며, 스포츠 마케팅 역시 추억을 이용해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됐다. ‘박지성 맨유 가고 나서 축구본 사람’, ‘베이징 이후 야구 본 사람’은 과거에는 축구나 야구를 본 지 얼마 안 된 ‘뉴비’로 불렸지만, 2024년 현재는 축구를 19년, 야구를 16년째 보는 어엿한 베테랑(?) 시청자다. 굳이 한일 월드컵이나 베이징 올림픽, 농구대잔치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한국 스포츠는 이미 여러 팬들과 마케팅에 사용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다.

각 종목을 대표할만한 추억의 음악이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축구의 <Champions>, 야구의 <난 너에게>, 농구의 <너에게로 가는 길>과 <마지막 승부>, 골프의 <상록수> 등 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스포츠 역시 추억의 음악과 연이 많다. 좋은 재료가 많고,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유인 역시 풍부하다. 추억의 멜로디 바람이 프로스포츠에도 불 수 있을지 고대해 본다.

CONTENTS : INDUSTRY TREND

이 페이지 공유하기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