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잡다! 팬을 잡다!
K리그, KBO의 ‘시성비’
#1 글. 류청 히든K 편집장
#2 글. 장강훈 스포츠서울 스포츠부장
#1 K리그 : 시간과 팬을 함께 사로잡다
#2 KBO : 시간 가는 줄 모르겠죠
소비형태 트렌드에 민감한 프로스포츠도 팬들의 ‘시성비’를 충족시키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팬들의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팬들에게 만족스러운 경기를 선사하기 위해 국내 프로스포츠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팬들의 ‘시성비’를 위한 K리그와 KBO의 노력을 모아본다.
#1 K리그
시간과 팬을 함께 사로잡다
보수적이면서도 혁명적인 축구의 ‘시간’ 싸움
축구는 보수적이면서도 혁명적이다. 축구와 한몸으로 보이는 옐로카드와 레드카드, 그리고 이제는 5명까지 가능한 선수 교체도 초대 월드컵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축구가 이 규정을 수용한 것이다.
축구는 첨단 과학기술을 접목하는 일에도 다른 종목보다 상대적으로 적극적이다. 이젠 축구의 완벽한 일부가 된 비디오 판독(VAR; Video Assistant Referee)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도입됐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017시즌 중반부터 VAR을 K리그에 도입해 사용 중이다.
오심을 극적으로 줄여주는 VAR 없는 축구와 K리그는 꿈꿀 수 없지만,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바로 시간이다. 축구는 격렬한 몸싸움에서 나오는 파울과 볼 아웃으로 끊기는 일이 많은 스포츠다. 축구는 흐름인데, 이런 태생적인 아쉬움에 VAR까지 겹치면서 관람하는 재미가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실정이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아시아축구연맹(AFC) 그리고 K리그 모두 이 부분을 매끄럽게 진행해서 경기의 박진감을 이어가려고 노력 중이다.
실제 경기 시간 늘리기, ‘5분 더 캠페인’
2016년에 축구 관련 규칙을 총괄하는 국제축구협회평의회(IFAB)는 ‘플레이 페어 전략’의 하나로 축구의 부정적인 면들을 제거하는 전략보고서를 공개했다. 주요 내용은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규칙 변경이었으며, 실제 경기 시간을 늘리기 위한 것이었다. 재미있는 경기의 핵심이 ‘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기가 살아 움직이지 않는 ‘죽은 시간’이 늘어나면 경기 품질은 낮아지기 마련이다.
K리그는 예전부터 시간(혹은 흐름)을 잡으려고 했다. 실제 경기 시간(APT; Actual Playing Time, 정규 경기 시간 중 경기가 중단되지 않고 실제로 진행된 시간)이 중요하다는 걸 인지하고 지속해서 움직였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게 2010~2013년, 2019년에 진행한 ‘5분 더 캠페인’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 홍보팀의 이성민 프로에 따르면 “‘5분 더 캠페인’은 데드타임을 줄이고, 실제 경기 시간을 늘리자는 캠페인”이다. “현재 5분 더 캠페인을 대외적으로 시행한다고 발표하고 있지 않지만, 실제 경기 시간을 늘리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감독, 선수들의 자발적인 인식 변화로 인해 고의로 경기를 지연시키고 중단하는 행위들은 예전에 비해 많이 감소하였습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시간 지연 방지 위해 심판 판정 가이드라인 교육
“그 외 시행하는 제도로는 심판 판정 가이드라인 교육을 통해 고의적 시간 지연행위를 하지 않도록 매 시즌 교육하고 있으며, 경기구 멀티 볼 활용(6개 → 13개), 볼 보이 인원 증원(8명 → 12명) 등을 시행 중입니다. 선수 교체 시 나가는 선수가 본부석 쪽 중앙까지 걸어와서 나갔는데, 교체 신호가 표출되면 교체 대상 선수는 본부석 쪽 중앙이 아닌 가까운 라인 밖으로 바로 나가게 하여 선수 교체 시간을 단축하였습니다.”
축구는 특성상 신체 접촉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그 자체가 볼거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충돌을 인정하면서 매끄럽게 경기를 운영하는지가 상당히 중요하다. K리그가 APT를 늘리는 과정에 심판 판정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이유가 여기 있다. 당연히 판정은 경기규칙에 의거해 심판이 판단하는 것이지만, 큰 틀에서 리그가 경향성을 만들 수 있다. (*편파 판정을 하라는 게 절대 아니다)
“K리그는 잦은 파울 판정으로 경기의 흐름이 끊어지는 횟수가 자주 일어나지 않게 득점이 많이 발생하지 않는 지역에서는 플레이가 이어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가령 그라운드 정중앙에서 볼 탈취와 선수들의 몸싸움이 치열하더라도 해당 장면에 대해 어드밴티지를 부여하여 플레이가 끊이지 않고 연속해서 진행되도록 될 수 있으면 휘슬을 불지 않는 기준을 세워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심판뿐 아니라 매 시즌 전 선수단 대상 교육
심판뿐 아니라 경기를 직접 만드는 감독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선수들 인식도 매우 중요하다. K리그는 매 시즌 시작 전, 전 선수단을 대상으로 심판 판정 가이드라인 교육을 진행한다. 이 자리에서 이번 시즌 판정의 중점사항을 설명하면서 경기 중에 시간을 지연하거나 고의로 경기를 중단하면 엄격하게 제재하겠다고 강조한다.
처음으로 5분 더 캠페인을 진행한 2010년에는 K리그 개막 미디어 행사에서 감독, 선수, 심판이 대표자로 나와 5분 더 캠페인을 준수하겠다는 선서를 하기도 했다. 두 번째로 동일한 캠페인을 진행할 때는 매 라운드 경기가 중단된 시간을 사유별(아웃 오브 플레이, 파울, 부상, 선수 교체)로 나눠 팀별 통계치를 산출해 일 반에 공개하고, 경기의 질을 올리거나, 반감시킨 사례를 선별해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 배포했다.
‘5분 더 캠페인’ 시행 후
실제 무승부 경기가 줄어들었고,
파울수도 눈에 띄게 감소했습니다.
이 캠페인을 통해 평균 득점이
전 시즌(2.6골) 대비 0.3골 늘어난
2.9골을 기록했습니다.
K리그 심판들을 대상으로 한 VAR 보수교육 실시 모습 ©한국프로축구연맹
APT가 늘어나면 경기는 재미있어진다
여기까지 읽고도 ‘APT가 늘어나면 경기가 재미있어질까?’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K리그는 APT를 늘리자 더 나은 경기, 더 재미있는 경기가 나왔다는 증거자료를 가지고 있다.
“‘5분 더 캠페인’ 시행 후 실제 무승부 경기가 줄어들었고, 파울수도 눈에 띄게 감소했습니다. 이 캠페인을 통해 2010년 당시 평균 득점이 전 시즌(2.6골) 대비 0.3골 늘어난 2.9골을 기록했습니다. 매년 증가세를 보이던 APT는 2018년 58분 43초까지 올라갔습니다.”
FIFA는 ‘2022 카타르 월드컵’부터 APT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실행했다. 바로 전반과 후반 정규시간이 끝난 후에 경기가 지연된 만큼 추가시간을 주는 방안이다. ‘아무리 침대 축구를 해도 소용없다. 누워 있던 시간만큼 더 뛰어야 한다’랄까. 결과적으로 추가시간이 10분을 넘어가는 경기를 모두가 봤을 것이다.
K리그도 이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이성민 프로는 “2023시즌에는 추가 시간이 지난 시즌 대비 평균 3분 정도 증가했습니다”라고 밝혔다.
K리그는 여전히 더 좋은 경기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만, APT 차원에서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2010년부터 이어온 발걸음이 의미 있었다는 뜻이다. 이 프로는 “22-23시즌 기준, 주요 리그 APT를 보면 K리그가 타 리그보다 절대 낮지 않은 APT를 보입니다. 과거 K리그는 거친 파울과 잦은 경기 중단의 이미지가 굳어져 지금도 대내외적으로 APT가 짧다고 생각하지만, 현재는 많이 개선됐습니다”라고 설명했다.
* 단, 리그별 APT 측정 기준이 상이할 수 있음
K리그의 시성비는 계속 좋아지는 중
팬을 잡는 필수 요소인 K리그의 ‘시성비’는 계속 좋아지는 중이다. 다만 시성비를 더 높이려면 경기의 질도 더 좋아져야 한다. 오랜만에 K리그 무대로 복귀한 김학범 제주유나이티드 감독이 선수들과 첫 대면에서 “이제 100분을 뛸 체력을 갖춰야 한다”라고 강조한 이유다. 제주뿐 아니라 K리그 모든 구단은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으려고 체력 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추세다.
K리그 차원에서도 경기 품질 향상을 돕는다. 기술위원회 산하 TSG(기술연구그룹)에서 <월간 TSG>라는 테크니컬 리포트를 발행하고 있다. ‘월별 분석 리포트’와 ‘전술후술 영상 콘텐츠’, ‘연말 테크니컬 리포트’ 등이 담겨 있다. K리그의 전력 분석을 통해 각 팀의 전술 개발, 전력 향상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는 것이다.
K리그는 2023시즌에 이제껏 오르지 못한 경지에 올랐다. 평균 관중 1만 명(10,733명, 유료 관중 집계를 시작한 2018시즌 이후 처음 1만 명 돌파)을 넘기면서 인기에 가속도를 붙였다.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다. 올 시즌에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출신으로 FC서울 유니폼을 입은 제시 린가드도 흥행에 불을 붙일 준비를 마쳤다. 이제 더 질 높은 경기와 더 높은 ‘시성비’로 팬들에게 어필해야 한다.
©한국프로축구연맹
©한국프로축구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