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TION REPORT

그때 살지도 않았는데 왜?
과거 경험하려는 2030

빈티지 디지털카메라 열풍으로 본
‘경험적 레트로’의 시대

2026년 3월 5일 오후, 비 내리는 날 세운상가. 갑작스럽게 내린 비에도 상가를 찾은 2030의 시선은 한곳에 머물렀다. 20여 년 전 출시된 은색 디지털카메라들이 빼곡히 적재된 선반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어렸을 적, 혹은 태어나기 전에 나온 모델들을 꺼내 보고, 전원을 켜고, 셔터를 눌렀다. 현장에서 만난 2030은 과거를 그리워하기보다 경험하고 싶어 했다. 2030에게 빈티지 제품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과거’였다.

한경닷컴 이슈부 기자. 현장을 기반으로 2030 소비 트렌드, 디지털 문화를 취재하고 있다.

제품 자체보다
‘새로운 과거’ 찾는 2030

주말에도, 평일 오후 1시에도 세운상가 복도는 카메라 상가 웨이팅 줄로 채워졌다. 2030은 카메라 상가에서 추억을 회상하지 않았다. 저화질 사진, 강한 플래시, 실제와는 조금 다른 색감 등 스마트폰 카메라에서는 단점으로 여겨질 요소들이 이들에게는 구매 요소였다. 그들은 제품 자체보다 구매 과정부터 경험과 이야기를 소비했다.

세운상가의 빈티지 디지털카메라 가격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준다. 4~5년 전 2만~3만 원에 판매됐던 매물이 현재는 기본 10만 원을 넘어간다. 인기 있는 제품은 30만~40만 원은 물론 50만 원대 매물도 있다. 빈티지 제품 특성상 매물은 점점 줄어드는데 수요는 늘어 가격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것이다.

가격 상승 못지않게 눈에 띄는 변화는 브랜드 충성도 약화였다. 한 브랜드가 영원한 왕좌를 차지하기보다 시즌마다 인기 있는 제품이 바뀌었다. 1992년부터 세운상가에서 34년간 카메라 판매점을 운영한 70대 A씨는 “4~5년 전 빈티지 디지털카메라가 인기를 얻을 때쯤에는 올림푸스, 그다음에는 후지, 소니, 캐논, 니콘 순으로 찾는 제품이 넘어가더라”라며 “지금은 카시오 등이 인기지만, 브랜드를 안 따지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선호 브랜드가 뚜렷했지만, 최근에는 브랜드보다 ‘빈티지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한다’는 경험 자체가 중요해진 것이다.

2030에게 레트로는 무엇을 사느냐보다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소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됐다. 이는 기존의 레트로 소비와는 결이 다르다. 과거의 레트로는 추억을 복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최근 2030의 레트로 소비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를 체험하는 데 가깝다. 빈티지 카메라 열풍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세운상가 내 카메라 상가

2030에게 레트로는 무엇을 사느냐보다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소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 셈이다.

‘인스타그래머블’이 만든
빈티지 디카 문화

그렇다면 왜 빈티지 디지털카메라일까. 비결은 인스타그래머블한 결과물에 있었다. 걸그룹 에스파 카리나, 르세라핌 사쿠라, 김채원 등 연예인들이 SNS에 올린 빈티지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은 2030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카메라 자체보다 결과물이었다. 스마트폰으로 구현할 수 없는 강한 플래시와 독특한 색감은 차별화된 SNS 콘텐츠였다. 연예인들의 ‘디카 감성’ SNS를 따라 하고픈 소비자들이 시장으로 새로 유입됐다. 이러한 흐름은 디토(ditto) 소비 확산과도 맞닿아 있다.

그렇게 시장에 들어온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빈티지 디지털카메라를 새로운 취미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엑스(X·옛 트위터)에서는 함께 사진을 찍으러 떠나는 출사 모임이 열렸다. ‘디카’와 ‘놀이’를 합친 ‘디놀’이라는 표현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디놀하러 왔다”, “1~2월 디놀” 같은 게시물이 이어졌고, 촬영한 사진은 ‘작례(작품 예시)’라는 이름으로 공유됐다. 서로 다른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색감과 질감을 비교하고 추천하는 문화도 함께 형성됐다. 빈티지 디지털카메라가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커뮤니티와 취미를 만들어내는 매개체가 된 셈이다.

X에서 공유되는 ‘디놀’ 인증 사진 © @leuie

프로스포츠에서 경험할 수 있는 레트로

빈티지 디지털카메라 열풍은 프로스포츠 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30은 과거를 소비하기보다 경험하는 데 가치를 뒀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프로스포츠 산업에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단순 과거 복각 제품이 2030 사이에서 경쟁력이 있을까.”

최근 프로스포츠 구단들은 레트로 유니폼, 올드 로고 상품, 복고 콘셉트 이벤트 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프로야구만 봐도 두산 베어스와 SSG 랜더스는 각각 ‘렛-두로 씨리즈’, ‘레트로 데이’ 이벤트를 야구장에서 열었다. 이 두 행사의 특징은 단순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때 그 시절’ 응원문화를 팬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예전에 쓰인 선수 등장곡, 응원가, 추억의 맥주배틀, 부츠컷 청바지를 입은 응원단 등으로 프로야구 붐이 일기 전 있었던 문화 요소를 담았다. 단순 소비가 아닌 경험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말 그대로 ‘경험적 레트로’였다.

2023년부터 두산 베어스를 좋아한 박모 씨(30·여성)은 “엄청 예전부터 좋아했으면 추억 나는 게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며 “하지만 그날만 부를 수 있다는 희소성이 있어서 다들 되게 신나게 부른다. 그게 재밌다. 응원가랑 별개로 등장곡도 평소랑 다르게 선수들이 옛날곡을 직접 고르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새로 유입된 2030 여성에게 레트로란 향수가 아니라 ‘새로운 경험’인 것을 시사한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레트로 시장의 주 소비자층은 당시 경험이 없는 2030 여성”이라며 “이들은 과거를 회상하기보다 직접 사용하고 체험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빈티지 디지털카메라는 한 현상이다. 경험 소비로서 가치가 느껴진다면 이들은 넥스트 빈티지 디지털카메라에 열광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2030에게 레트로는 과거를 떠올리는 일이 아니다.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직접 경험해보는 일이다. 빈티지 디지털카메라 열풍은 그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였다. 결국 2030이 소비하는 것은 과거가 아닌 ‘새로운 과거’였다.

© SSG 랜더스 © 두산 베어스

2030에게 레트로는 과거를 떠올리는 일이 아니다.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직접 경험해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