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S:VIEWPOINT

공간이 도시를 브랜딩한다

대형 이벤트가 증명한 오프라인의 힘

온라인으로 무엇이든 보고 살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오히려 직접 가야만 얻는 ‘경험’에 시간과 돈을 쓴다. 팝업스토어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고, 한정된 기간에만 열리는 전시와 페스티벌은 티켓이 순식간에 동난다. 여행과 공연, 미식처럼 몸으로 직접 겪는 소비가 빠르게 늘고 있다. 온라인이 모든 정보를 평준화할수록, 사람들은 오직 그 자리에서만 가능한 경험에 더 큰 값을 치른다. 화면으로 본 도시는 정보로 남지만, 직접 발을 들인 도시는 그날의 공기와 걸어 본 거리, 함께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디지털이 흔해질수록 희소해진 자원은 사람의 시간과 주의(attention)다. 그리고 그것을 한곳에 모으는 가장 강력한 장치가 대형 이벤트다. 도시들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대형 이벤트를 유치하려 경쟁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 번의 이벤트는 도시의 이름을 전 세계의 기억에 새기고, 그 기억은 관광객과 투자, 도시의 위상으로 돌아온다. 오프라인 경험이 다시 중요해진 시대에, 도시의 경쟁력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경험하느냐로 가려진다. 관건은 이벤트의 규모보다, 그 이벤트가 도시의 공간을 어떻게 경험으로 설계하느냐에 있다. 잘 설계된 공간은 사람을 모으고, 머물게 하고, 다시 찾게 만든다. 도시 브랜딩의 승부처는 사람이 직접 겪는 공간에 있다.

㈜어메이즈(A+MAZE) 대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감각의 설계자들〉 저자

2025년 5월 열린 KCON JAPAN. K-컬처를 중심으로 팬과 도시를 연결하는 글로벌 오프라인 축제. ⓒ CJ ENM 뉴스룸
센강에서 진행된 2024 파리 올림픽의 개회식 전경 ⓒ olympics 홈페이지 2024 NFL 드래프트가 열린 디트로이트 도심 ⓒ shutterstock

도시를 통째로 무대로
파리 올림픽과 BTS ‘THE CITY’

2024년 파리 올림픽은 경기장을 새로 짓는 대신 도시의 명소를 경기장으로 썼다. 에펠탑 앞 모래밭에서 비치발리볼이 열렸고, 그랑팔레의 유리 돔 아래에서 펜싱이,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서 승마가 치러졌다. 개막식마저 경기장을 벗어나 센강 위에서 진행됐다. 경기 장면마다 파리의 랜드마크가 배경으로 들어가, 전 세계로 나가는 중계 화면이 그대로 도시 광고가 됐다. 도시 곳곳이 경기장이 되면서 관광객의 동선도 도시 전체로 퍼졌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한 비치발리볼 사진 한 장이 파리 관광청의 어떤 캠페인보다 멀리 퍼졌다. 2주간의 대회가, 평소라면 수년치 광고비로도 사기 어려운 도시 이미지를 단번에 새겼다. 사람들이 기억한 것은 종목의 기록보다 ‘파리에서 열린 올림픽’이라는 장면이다.

같은 원리를 한 콘서트가 도시 전체로 확장한 사례가 BTS의 ‘THE CITY’다. 하이브의 이 프로젝트는 공연 하루를 개최 도시 곳곳에서 즐기는 축제로 넓힌다. 2026년 6월 부산은 BTS 월드투어 공연에 맞춰 도시 전역을 무대로 바꿨다. 광안리해수욕장에서는 드론 1,000대와 광안대교 경관조명을 결합한 라이팅쇼가 열리고, 부산항 제1부두에는 로컬 식음료와 라이프스타일 마켓 ‘포트 빌리지’가 들어섰다. 래핑 시티투어버스와 네 갈래 테마 관광코스가 BTS공연의 관람객들을 도시에 며칠 머무는 체류형 관광객으로 바꿨다. 부산시는 이를 위해 환대·체험·미식·각인이라는 네 축으로 프로그램을 짰다. 공연 티켓을 구하지 못한 사람도 도시에 와서 축제를 즐기도록 짜인 설계다. 공연장은 하루지만, 도시는 여러 날의 경험으로 설계됐다.

2024 파리 올림픽 펜싱 경기가 열린 그랑팔레 ⓒ 연합뉴스 BTS 더시티 부산 공연 기념 특별 드론쇼 © 연합뉴스
더 시티 부산의 프로그램 정보를 담은 안내 지도 © 빅히트뮤직 해운대에 설치된 대형 모래 조각 ⓒ 빅히트뮤직 해운대 마린시티 앞바다 특별 요트 ⓒ 빅히트뮤직

이벤트가 도시의 경제와
이미지를 끌어올린다
F1 싱가포르, SXSW

싱가포르 F1 그랑프리는 2008년 세계 최초의 야간 레이스로 출발해, 마리나베이의 도심 도로를 그대로 경주장으로 삼았다. 빌딩 숲 사이를 달리는 야간 경주의 장면은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됐다. 2008년 이후 이 레이스가 끌어들인 외국인 방문객은 누적 72만 명, 추가 관광 수입은 22억 싱가포르달러에 이른다. 레이스 주간에는 도시 방문이 평소보다 25% 늘고, 밤 11시부터 새벽 5시 사이의 소비가 90% 넘게 상승한다. 도시는 한 주의 경주를 위해 마리나베이 일대를 통째로 무대로 바꾸고, 그 경험을 매년 되판다. 같은 경주가 반복되며, 그 야경은 ‘밤에도 살아 있는 도시’라는 싱가포르의 영구적인 관광 자산으로 굳었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는 음악과 영화, 기술을 뒤섞은 축제로 작은 도시를 ‘창의의 도시’로 끌어올렸다. 오스틴은 이 축제로 ‘라이브 음악의 수도’라는 별명을 얻었다. 축제 기간이면 도시 전체가 무대이자 쇼케이스로 바뀐다. 2024년 행사에는 4만 7,000명이 현장을 찾았고 온라인으로 18만 명이 더 함께했으며, 지역에 안긴 경제 효과는 3억 7,700만 달러에 이른다. 이제는 다른 도시들이 SXSW를 찾아와 자기 도시를 홍보하는 무대로 쓴다. 축제 하나가 도시 브랜딩의 가장 중요한 플랫폼이 된 것이다.

이제는 다른 도시들이 SXSW를 찾아와 자기 도시를 홍보하는 무대로 쓴다.

싱가포르의 영구적인 관광 자산, F1 그랑프리 © shutterstock
F1 싱가포르 그랑프리 우승 세리머니. 세계적 스포츠 이벤트는 도시를 찾게 만드는 강력한 관광 콘텐츠다. © shutterstock 작은 도시를 ‘창의의 도시’로 이끈 세계 최대 규모의 융복합 페스티벌 SXSW © SXSW

한 도시를 영화로 각인시키다
부산국제영화제

국내에도 도시의 이미지를 바꾼 이벤트가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1996년 출발해 부산을 ‘영화 도시’로 각인시켰고, 도쿄·홍콩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올라섰다. 2011년 센텀시티에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인 영화의전당이 들어서며 해운대 일대가 영화제의 중심이 됐고, 남포동 BIFF광장은 시민과 영화인이 함께 즐기는 거리로 남았다. 영화제 기간이면 레드카펫과 야외 상영, 거리 행사가 도시 곳곳에서 열려 부산 전체가 하나의 극장이 된다. 가을이면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로 해운대 거리가 가득 찬다. 한 축제가 30년 가까이 같은 자리에서 반복되며 ‘부산은 영화의 도시’라는 등식을 만들었다.

‘부산은 영화의 도시’라는 등식을 만든 부산국제영화제 © 부산국제영화제

공간이 도시 브랜딩 자산이 되는 원리

이 사례들에는 공통된 설계가 깔려 있다. 첫째, 도시의 랜드마크를 이벤트의 배경으로 끌어들여 장소와 사건을 한 장면에 묶는다. 에펠탑 앞 비치발리볼, 마리나베이의 야간 레이스가 그렇다. 둘째, 공연장이나 경기장 한 곳에 경험을 가두지 않고 도시 곳곳에 흩뿌려, 방문객이 더 오래 머물고 더 많이 쓰게 한다. 잘 설계된 동선은 방문객의 시선과 발길을 원하는 장면으로 이끌고, 그 경험은 사진과 입소문을 타고 퍼지며 도시의 이미지를 다시 쓴다. 셋째,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반복해 도시의 정체성으로 굳힌다. 넷째, 시민의 일상과 방문객의 경험을 같은 공간에서 겹치게 해, 행사가 끝난 뒤에도 도시의 분위기로 남긴다. 공간은 그 자체로 메시지를 전한다. 사람이 무엇을 보고 어디서 멈추며 어떤 순간을 사진에 담는지까지 미리 설계하는 일, 그것이 평범한 장소를 도시의 자산으로 바꾸는 출발점이다.

도시 브랜딩은 결국 경험의 설계에서 시작된다.

프로스포츠가 가져갈 오프라인 경험 설계 전략

이 흐름은 프로스포츠 구단에게 먼 이야기가 아니다. 올림픽이 4년에 한 번 도시를 무대에 세운다면, 구단은 한 시즌에 수십 번 같은 도시를 무대에 세운다. 게다가 구단은 도시의 특정 지역과 오래 묶인 존재다. 행사가 끝나면 떠나는 일회성 이벤트와 달리, 구단은 같은 동네에서 수십 년을 함께한다. 이 지속성은 도시 브랜딩에서 가장 큰 무기가 된다. 다만 대부분의 구단은 그 경기일을 경기장 안에서만 소비한다. 관중은 경기를 보고 곧장 흩어지고, 도시와 구단의 연결은 점수판에서 끝난다.

경기일을 도시의 이벤트로 설계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경기 전후로 구장 주변 거리와 상권을 행사장으로 묶고, 원정 관중에게 도시에서 하루를 더 머물 이유를 만든다. 지역 맛집과 숙소를 묶은 원정 관전 패키지, 구장 앞 광장의 시즌 마켓, 시와 구단이 함께 여는 거리 축제, 홈 개막전과 지역 축제의 연계까지, 경기를 도시 경험의 출발점으로 삼는 장치는 많다. 도심에 자리한 구단은 경기 후 관중을 인근 상권으로 흘려보내고, 지방 구단은 지역 축제와 일정을 맞춰 외지 팬을 끌어들일 수 있다. 도착과 대기, 관람과 귀가로 이어지는 동선 전체를 경험으로 짜면, 관중은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그 도시에서 보낸 하루’를 기억한다. 이렇게 쌓인 경험은 관중의 재방문과 지역 팬덤으로 돌아오며, 구단을 도시의 일부로 자리매김시킨다. F1이 야경을, BTS가 도시 전역을 브랜딩 자산으로 삼았듯, 구단은 자신의 연고 도시를 가장 큰 자산으로 쓸 수 있다.

관건은 경험의 정교함이다. 더 큰 경기장보다, 더 잘 설계된 하루가 사람을 도시에 붙든다. 오프라인의 힘은 결국 공간을 경험으로 바꾸는 설계에서 나온다. 경기를 보러 온 사람을 그 도시를 기억하는 사람으로 바꿀 때, 구단은 도시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