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CHMARK

해외 프로스포츠 리그의
오프라인이 만드는 연결

경기장은 더 이상 경기를 보는 곳에 머물지 않는다. 세계 주요 리그와 구단들은 경기장을 중심으로 팬의 참여를 유도하고, 도시와 지역사회와의 접점을 넓히며, 경기 없는 날에도 찾고 싶은 공간을 만들어 왔다. 미국·유럽·일본 프로스포츠의 사례를 통해 오프라인 공간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치와 가능성을 살펴본다.

#1 USA : 경기장으로 가는 길이 이미 경기다

미국 프로스포츠의 오프라인 경험 설계, 그 진화의 궤적

프로스포츠의 현장관람은 경기장으로 향하는 두근거림으로부터 시작된다. 지하철 역에 가까워지고, 출구를 나서거나 주차장 차문을 여는 순간에도 그 기대감이 이어진다. 같은 팀 유니폼을 입은 낯선 이들이 하나둘 시야에 들어오고, 경기장에 가까워질수록 그 수가 늘어나면서 그 감정이 혼자만의 것이 아님에 더욱 들뜬다. 배너와 구호, 음악과 함성이 감정을 끌어올리고, 티켓을 내밀고 자리를 찾아가서 해당 게이트를 통과하는 그 짧은 순간, 간단한 간식을 구매하고 자리에 착석하는 순간,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모든 순간이 엔터테인먼트 체험의 연속이다.

미국은 가장 오래된 프로스포츠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스포츠 종목들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게 진화해 왔다. 가장 먼저 프로 리그가 제도화된 야구는 도시 지역 중심으로 발전한 반면, 미식축구는 외곽 위주로 발전했다. 농구는 실내에서 상대적으로 소규모 경기장에서 열렸는데, 현대 시각에서는 희소성 기반의 더 합리적인 성장으로 보이기도 한다. 미국 프로축구 MLS는 상대적으로 나중에 발전했지만, 해외 축구나 미국 내 다른 종목의 사례들로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급성장을 이루기도 했다. 미국 프로스포츠는 이 감정의 상승 곡선을 150년에 걸쳐 다듬어 왔다. 그 과정에서 각 종목은 서로 다른 ‘오프라인 경험의 문법’을 만들어냈다.

텍사스 A&M 교수.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스포츠매니지먼트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포츠 관중 심리를 중심으로 감성과학을 기반으로 한 융·복합연구를 수행 중이다.

도심 문화 vs. 주차장 축제:
야구와 미식축구의 두 모델

1871년 출범한 미국 프로야구는 도시의 일상 속에 뿌리를 내렸다. 연간 81경기 이상의 홈경기를 치르는 야구 경기장은 도심 블록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주변 상권과 함께 성장했다. 오늘날 미국 야구장 개발의 공식은 ‘복합 엔터테인먼트 지구(mixed-use entertainment district)’로 수렴된다. 경기장을 중심으로, 식음·쇼핑·숙박·주거가 결합된 복합 공간이다. 때문에 팬에게 야구 관람은 단순히 경기를 보는 일이 아니라 도심을 걷고, 먹고, 머무르는 도시적 경험의 일부다.

미식축구는 상반된 방향으로 발전했다. 시즌 홈경기가 단 8~9경기에 불과한 NFL은 연간 대부분의 시간 동안 경기장을 내주어야 한다. 이 구조와 맞물려 미식축구 경기장들은 교외의 넓은 부지를 선택하게 되었고, 7만 명 이상이 동시에 몰려드는 수요를 감당하려면 광대한 주차장이 필요했다. 그 주차장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난 것이 ‘테일게이팅(tailgating)’ 문화다. 경기 전 수 시간 동안 주차장에서 바비큐를 굽고, 맥주를 마시고, 낯선 팬과 교류하는 그 축제가 미식축구 현장관람 경험의 핵심이다. 이처럼 야구가 ‘도심권을 걸으며 녹아드는 문화’라면, 미식축구는 ‘일상으로부터 이주해와서 머무르는 문화’다.

피츠버그 도심과 맞닿아 있는 PNC 파크 © shutterstock 광대한 주차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NFL의 대표적 팬 문화, 테일게이팅 © shutterstock

시애틀에서 시작된 행진:
MLS와 팬 리추얼의 설계

미국 4대 프로스포츠에 비해 역사가 짧은 MLS 축구는 그 후발성을 오히려 강점으로 활용했다. 유럽 축구의 서포터 문화, 미국 스포츠의 이벤트 운영 노하우, 디지털 기반 팬 데이터를 전략적으로 결합하면서 MLS 구단들은 처음부터 경기장 안팎의 참여 의식을 의도적으로 설계했다.

상징적인 초창기 사례는 시애틀 사운더스의 ‘March to the Match’다. 이 행진은 거창한 기획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2005년, 아직 USL(2부 리그) 시절이던 사운더스의 서포터 그룹 ECS(Emerald City Supporters) 멤버들이 파이오니어 스퀘어 인근 술집에서 모여 함께 경기장까지 걷기 시작한 것이 전부였다. “한잔 하고 같이 걸어가자.” 그 단순한 행동이 반복되었고, 리추얼이 되었다.

2009년 MLS 진입과 함께 구단은 이 자연발생적 전통을 공식 이벤트로 격상시켰다. 킥오프 90분 전 경기장 근처 옥시덴털 공원에서 DJ와 사운더스 공식 밴드인 ‘SoundWave’ 브라스밴드의 공연이 시작된다. 60분 전, 가장 큰 서포터 그룹인 에메랄드 시티 서포터들이 선두에 서고 행진이 출발한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옥시덴털 거리를 따라 약 800미터를 걸어 다목적 경기장인 루멘 필드에 도착하는 동안, 행렬은 응원가를 부르고 스카프를 흔든다. 이미 자리에 앉은 팬들도 그 소리를 경기장 안에서 듣는다. 행진이 도착하는 순간, 경기 전 분위기는 절정에 이른다. 첫 MLS 시즌이었던 2009년, 사운더스는 평균 관중 3만 943명이라는 당시 MLS 신기록을 세웠다. 행진 문화를 만들어낸 팬들과 구단이 함께 이룬 숫자였다.

시애틀 사운더스의 ‘March to the Match’. 팬과 구단이 함께 만든 MLS 대표 리추얼 © 시애틀 사운더스 홈페이지

또 다른 MLS 구단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질문에 답했다. 미네소타 유나이티드는 경기 종료 휘슬 이후의 시간을 하나의 의식으로 묶어냈다. 이 클럽의 상징적 장면은 홈에서 승리한 뒤 선수들과 팬들이 함께 부르는 ‘원더월(Wonderwall)’ 합창이다. 오아시스의 원곡이 경기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면 서포터 섹션의 드럼과 타악기가 분주하게 박자를 잡고, 팀의 색을 입은 푸른 연기가 관중석을 뒤덮는다. 단순한 배경 음악이 아니라, 그날 경기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컷을 선수와 스태프, 관중 모두가 한 목소리로 완성하는 공동의 엔딩 크레딧인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리추얼이 처음부터 ‘전통’이었던 것이 아니라, 클럽 초기인 2010년대 초 당시 코치와 선수단의 제안에서 출발한 작은 아이디어였다는 사실이다. “한 번 이겨서, 다 같이 이 노래를 불러보자”라는 가벼운 발상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이 팀이 이겼을 때 반드시 해야 하는 일”로 굳어졌다. 승리를 리추얼로, 구단이 팬들에게 다가가며 만들어낸 전통이다. 그래서 팬들에게 Wonderwall은 단순한 응원가가 아니라, “오늘은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날인가”를 가늠하게 만드는 일종의 감정 지표가 된다.

연패가 이어지던 시즌에도 팬들은 언젠가 다시 그 노래를 함께 부를 날을 기약하며 경기장을 찾는다. 어떤 날은 경기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간신히 지켜낸 1골 차 승리라는 이유만으로 Wonderwall이 경기장을 뒤덮는다. 숫자만 남기면 곧 잊혀질 승리가 한 곡의 합창과 함께 “그날 밤의 장면”으로 고정되는 순간이다. “오늘 경기는 어땠냐”는 질문에 팬들이 스코어보다 “오늘 Wonderwall은 유난히 컸다”고 먼저 떠올리는 이유다. 승리가 스코어보드의 숫자를 넘어, 한 장면과 한 노래의 기억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시애틀 사운더스가 파이오니어 스퀘어에서 시작되는 행진을 통해 경기장으로 “함께 걸어가는 시간”을 설계했다면, 미네소타 유나이티드는 Wonderwall 합창을 통해 경기장을 “함께 떠나며 정리하는 시간”으로 설계했다. 하나는 경기 전, 다른 하나는 경기 후, 하나는 다가서면서 다른 하나는 물러나면서 감정의 고조와 마무리를 설계한 셈이다. 방향은 다르지만, 두 도시 모두 팬을 단순한 관람객이 아니라 경기 경험에 직접 참여하는 공동 창작자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닿아 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화를 정교한 설계로 전통으로 완성하는 과정은 국내 리그에도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Wonderwall’은 미네소타 유나이티드 팬들이 승리 후 함께 부르는 대표적인 경기 후 리추얼이다. © 미네소타 유나이티드 서포터 홈페이지

압축과 밀도:
NBA 아레나의 경험 설계

농구는 현대적 관점에서 오프라인 경험 설계에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갖춘 종목이다. 약 1만 8,000석 규모의 실내 아레나는 야구장이나 축구장보다 압도적으로 작아 도심 중심부에 전략적 배치가 가능하다. 덕분에 팬들의 이동 동선을 짧고 밀도 높게 통제할 수 있다. 최근 모든 프로스포츠 구단이 경기 전 경험을 제공하는 ‘팬 구역(Fan Zone)’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NBA는 특유의 세련된 감성과 테크놀로지를 결합해 젊은 팬덤을 가장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2024년 8월 개장한 LA 클리퍼스의 인튜잇 돔(Intuit Dome)은 이러한 설계 철학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상징적 공간이다. 약 20억 달러(약 2조 7,000억 원)가 투입된 이 경기장의 핵심은 ‘더 월(The Wall)’이라 불리는 4,500석 규모의 코어 서포터 구역이다. 단 하나의 시야 방해 요소 없이 51개 열이 가파른 경사로 이어지는 이 공간은 상대 팀 팬의 입장을 철저히 제한한다. 특히 좌석마다 배치된 마이크와 센서가 팬들의 함성 크기와 응원 강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한다. 이 데이터는 클리퍼스 공식 앱의 ‘웨이브 메이커스(Wave Makers)’ 시스템을 통해 포인트로 전환되며, 팬들은 이를 매점이나 굿즈 숍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승패라는 결과가 아니라 ‘응원 행위’ 자체를 즉각 보상하는 세계 최초의 데이터 기반 관람 시스템이다.

‘더 월’의 심장부인 맨 앞 13개 열, 300석 규모의 ‘더 스웰(The Swell)’ 구역은 입석 전용이자 선착순(First-come, First-served)으로 자리가 배정된다. 이 때문에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경기장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선다. 웅장한 아레나로 입장하기 위해 기다리는 이 대기 시간은 그 자체로 팬들의 거대한 ‘커뮤니티 리추얼(Ritual)’이 된다. 경기는 심판의 휘슬 소리로 시작되지만, 팬들의 몰입 경험은 이미 경기장 밖 줄 위에 서 있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다.

리추얼에서 데이터로:
설계의 진화

과거 시애틀의 팬 문화가 팬들의 자발적인 ‘발걸음’으로 다져진 아날로그 리추얼이었다면, 인튜잇 돔은 테크놀로지로 ‘측정하고 보상하는’ 디지털 리추얼의 결합이다. 이 간극은 오프라인 경험 설계가 나아가야 할 진화 방향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팬 경험 설계는 직관의 영역을 넘어 데이터 과학과의 교차점에 서 있다. 아레나 안팎의 모든 동선이 정밀하게 추적되며, 팬이 어디에 가장 오래 머무는지, 어느 순간에 감정이 최고조에 달하는지가 디지털 자산으로 축적된다. 신축 스타디움들이 도입하는 증강현실(AR) 서비스, 팬 성향 맞춤형 모바일 플랫폼 등은 모두 하나의 지향점을 갖는다. 팬의 시간을 1분 1초 단위로 촘촘하게 채우고, 경기가 없는 비시즌이나 일상 속에서도 구단에 대한 몰입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오프라인의 본질이 있다. 서포터즈들이 어깨를 맞대고 경기장으로 걸어갈 때의 공기, ‘더 스웰’ 앞에서 대기하며 처음 본 옆 사람과 나누는 이야기와 인연, 그러면 연결점들이 커뮤니티로 이어지는 경험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코트 위 퍼포먼스, 정교하게 관리된 아레나가 주는 시청각적 전율은 그 어떤 초고화질 스트리밍이나 앱으로도 재현할 수 없다.

팬이 다시 경기장을 찾게 만드는 오프라인 경험 설계의 핵심은 결국 하나다. 경기 시작 전부터 끝난 후까지, 팬이 ‘여기 있어야 할 이유’를 매 순간 느끼게 하는 것. 20년 전 시애틀의 술집 테이블에서도, 오늘날 최첨단 경기장에서도 모두 팬들이 그 시간과 장소에 존재해야 문화로 피어난다. 내가 존재하는 시대의 역사가 기록되고 전승되는 순간을 공유한다는 감각은, 대대로 이어질 경이로운 동류의식을 이어가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인튜잇 돔의 ‘더 스웰’. 팬들의 응원은 데이터로 기록되며 새로운 관람 경험을 만든다. © NBA 홈페이지

#2 EUROPE :
90분을 넘어, 일상 속으로

유럽 축구 구단은
어떻게 팬과 연결되는가

쇼핑몰 매출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고객을 좀 더 오래 머무르게 하고, 좀 더 많은 돈을 쓰게 하는 거다. 걷다가 지친 고객에게 쉴 자리를 제공하거나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이벤트를 제공하는 식이다. 영업일을 최대한 늘려 ‘저 상가는 언제나 문이 열려있다’라는 인식을 심어줘도 된다. 그렇게 뜨내기를 단골로 만들면 성공이다.

시간이 갈수록 스포츠팀도 스스로 쇼핑몰화하려고 애쓴다. 경기 티켓 판매만으로는 경쟁하기가 버겁기 때문이다. 식당 경영에서 주류 판매가 중요하듯이 스포츠팀도 파생 상품과 서비스로 매출을 극대화해야 한다. 매 시즌 홈경기 영업일 수가 많아 봤자 30일 남짓인 유럽 축구 클럽이라면, 이런 니즈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요즘 그들이 어떻게 애쓰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축구칼럼니스트. 축구 전문 매체 <스포탈코리아>를 거쳐 <포포투>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영웅전>을 썼고, <누구보다 축구 전문가가 되고 싶다> <스티븐 제라드> 등을 번역했으며, 손흥민 자전 에세이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을 정리했다.

활용도를 극대화한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21세기 들어 외국 자본이 유럽 축구계에 급속도로 유입됐다. 영국에서 시작된 이 트렌드는 서서히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으로 퍼졌다. 그때까지 유럽에서 스타디움은 ‘경기를 하는 곳’이었다. 외국 투자자들에게 그런 전통적 사고는 거대 구조물의 가치를 인지하지 못하는 구습일 뿐이었다. 이렇게 큰 건물을 갖고 있으면서 돈을 이것밖에 못 벌다니!

2019년 4월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6만 2,850석)’이 공식 개장했다. 10억 파운드(약 2조 원)가 넘는 신축 비용이 투입된 이 경기장은 유럽 최고의 스포츠베뉴 중 한 곳으로 손꼽힌다. 설계 단계부터 다양한 넌매치(none-match) 수익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결과,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은 현존 축구 경기장 중에서 가장 효용 가치가 높은 곳으로 평가받는다.

이곳의 천연잔디 피치는 수납이 가능하다. 잔디 노면을 치운 축구 경기장만큼 쓰임새가 많은 곳은 없다. 이미 비욘세, 레이디가가, 포스트 말론 등 세계적 팝스타가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현재 월드투어 중인 방탄소년단(BTS)의 런던 공연 장소도 이곳이다. 토트넘은 미국 NFL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해 2030년까지 매 시즌 NFL 정규 리그 경기(NFL 인터내셔널 시리즈)를 유치한다. 천연잔디를 치우면 아래에 수납됐던 인조잔디가 모습을 드러내는 덕분이다. 이뿐 아니라 경기장 내에는 NFL 전용 라커룸이 상설되어 있다. 다른 구단이 제공할 수 없는 차별화된 콘텐츠다.

또한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2024년 2월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의 남측 스탠드 지하 공간에 ‘F1 드라이브’가 개장했다. 방문자는 이곳에 설치된 트랙에서 전기 카트 레이싱을 즐길 수 있다. ‘F1 드라이브’는 단순한 놀이터가 아니라 F1 공식 홍보관이기도 하다. 익스트림 스포츠에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지상 46.8m 높이에서 경기장 지붕과 외벽을 걷는 ‘데어 스카이워크(the Dare Skywalk)’를 추천한다. 경기장뿐 아니라 런던 시내를 내려다 보는 특별한 경험이 가능하다.

이 밖에도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는 유럽 최장(65m) 맥주바와 수제 맥주 양조장, VIP용 스카이라운지 등 동시에 2,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F&B 시설이 완비되었다. 대기시간을 50% 이하로 줄여 회전율을 높이도록 맥주를 컵 바닥부터 채우는 ‘보텀업’ 디스펜서도 눈길을 끈다.

토트넘의 오프라인 경험 확장 전략은 숫자로 입증된다. 경기장을 축구 경기뿐 아니라 콘서트, 스포츠 이벤트, 액티비티, 관광을 즐길 수 있는 복합 경험 공간으로 전환하면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 것이다. 2024-25시즌 토트넘의 매출은 6억 7,260만 유로(1조 1,861억 원)로 이전보다 140% 증가했다. 사업 매출은 3억 3,000만 유로(5,819억 원)로 뛰어 성장률이 325%에 달한다. 사업 부문 매출 비중도 28%에서 49%로 증가했다. 축구 클럽 토트넘은 이제 경기일뿐만 아니라 비경기일에도 팬들이 찾는 오프라인 경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복합 경험 공간으로 전환하면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 shutterstock

축구의 디즈니랜드,
레알 마드리드의 베르나베우

레알 마드리드 역시 경기장을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 경험 확장을 통해 비경기일 매출을 크게 늘렸다. 사실 레알은 세계 최고 클럽이란 브랜드 이미지 덕분에 출발점부터 토트넘에 앞선다. 홈경기장 베르나베우는 애초부터 프라도 미술관과 레이나소피아 미술관의 뒤를 잇는 마드리드 관광 명소 3대장 중 한 곳이다. ‘투어 베르나베우’의 연간 방문객은 150만 명에 달한다.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은 부동산 재벌답게 베르나베우를 축구의 디즈니랜드로 변신시켰다. 2019년부터 시작된 전면 리노베이션 작업은 2023년 9월 완료되었다. 기본 골조를 제외한 경기장 안팎이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 360도 스코어보드, 개폐식 지붕, 천연잔디 피치 수납 시스템 등 첨단 기술이 베르나베우에 적용됐다.

이곳 역시 NFL 인터내셔널 시리즈 중 한 경기를 유치한다. 레알은 대형 콘서트는 물론 농구, 테니스 등 다양한 이벤트를 유치해 대관 매출을 키우는 중이다. 경기가 없는 날에는 관중석 상단에 ‘어퍼덱골프(Upper Deck Golf)’ 같은 이색 이벤트를 운영하기도 한다.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2023년 9월 공식 개장한 지 반년 만에 레알은 비경기일 매출 4,390만 유로(774억 원)를 기록해 그 전까지 1년 매출의 95%를 채웠다. 지난해 레알은 연매출 10억 유로(1조 7,635억 원)를 돌파한 최초의 축구 클럽에 등극했다.

마드리드의 대표 관광 명소이기도 한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 shutterstock

우리가 팬들에게 간다,
FC 바이에른 월드

독일 축구 절대강자 바이에른 뮌헨은 올림픽스타디움에서 2005년 5월 새로 지은 알리안츠 아레나로 이사했다. 7만 5,000석 규모, 강화된 F&B 시설, 색깔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외벽 디자인 등이 돋보이는 UEFA 최상 등급(category 4) 경기장이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나마 시내와 가까웠던 예전 홈그라운드와 달리 알리안츠 아레나는 시 외곽에 자리 잡았다. 대중교통 정거장에서 경기장까지 가는 길에는 주차장과 공원밖에 없다. 아무리 세계적 빅클럽이라고 해도 이런 입지 조건으로는 외부 방문객을 유인하기가 어렵다.

바이에른이 내놓은 답변은 ‘우리가 팬들에게 간다’였다. 2020년 12월 바이에른은 뮌헨의 중심지인 마리엔 광장 바로 옆에 ‘FC바이에른 월드’를 개장했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은 메인 스폰서 아디다스와 바이에른의 플래그십 스토어로 꾸며졌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팬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섹션도 마련됐다.

지상 7층까지는 ‘Do & Co Hotel München’이 입점했다. 객실 30개짜리 소형 부티크 호텔의 객실은 축구와 아무런 상관없는 고급스러운 내장으로 꾸며져 비즈니스 또는 하이엔드 관광객들을 타깃으로 영업한다. 단, 호텔 숙박과 함께 바이에른 홈경기 티켓, 알리안츠아레나 VIP라운지 이용권 등이 묶인 프리미엄 호스피탈리티 패키지 구매를 유도한다.

뮌헨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마리엔 광장에 들어선 플래그십 스토어는 팬들과 물리적 거리감을 없애고, 호텔 운영에서 부가 수익을 창출하는 마케팅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유럽 빅클럽 중에는 연고지 중심가에 클럽숍을 운영하는 사례가 있지만, 바이에른처럼 본격적인 영업 거점을 운영하는 곳은 드물다.

외곽 경기장의 한계를 넘어 도심 속 팬 경험 거점으로 조성된, FC 바이에른 월드 © shutterstock

지역사회 속으로 들어간
축구 클럽

독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이탈리아의 유벤투스는 팬들에게 비경기 일에 경기장을 찾을 이유를 제공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도르트문트의 홈경기장 지그날 이두나 파르크에는 청소년을 위한 사회 학습 센터가 운영된다. 장소는 도르트문트 팬덤을 상징하는 ‘옐로우 월(Yellow Wall)’ 아래 공간이다. 센터는 지역 학교와 연계해 시민의식, 다문화 학습, 차별 반대와 포용 등의 사회화 학습 커리큘럼을 제공한다. 청소년들은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나누면서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는 현대 사회 안에서 어떤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배운다. 다함께 참여해서 깨달음을 얻는 청소년 워크숍에 가깝다. 모든 과정이 끝나면 청소년들은 스타디움 투어를 통해 도르트문트라는 축구 클럽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다. 독일축구리그(DFL) 재단과 도르트문트 재단, 시 당국, 그리고 지역 기업의 후원으로 참가비는 무료다. 경기가 없는 날에도 지역 청소년들에게 경기장을 찾을 이유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건강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도르트문트 학습센터. 경기장을 지역 청소년을 위한 교육·체험 공간으로 확장했다.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홈페이지

유벤투스 스타디움은 2011년 9월 문을 열었다. 클럽을 수호하는 아넬리 가문은 토리노 근교에 부지를 사들여 경기장, 훈련장, 클럽하우스, 본사, 호텔 등으로 구성된 ‘J-빌리지’ 개발사업을 완료했다. 단지 안에는 국제학교까지 있어 선수단 자녀는 물론 지역사회의 공공재로서 구실도 수행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시설은 ‘J-메디컬’이다. 축구 클럽답게 정형외과, 스포츠재활, 체력 측정 등에 특화된 병원이다. 유벤투스가 새로 영입하는 선수의 메디컬 테스트는 물론 일반인도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K리그 구단들은 자체 의료진이 없이 경기일에만 파트너 의사가 주치의 역할을 자원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유벤투스나 밀란처럼 빅클럽은 스포츠의료에 특화된 자체 부서를 운영한다. 클럽이 정식 의사를 직접 고용하는데, ‘J-메디컬’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병원 내방이 곧 경기장 방문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J-메디컬’ 역시 클럽과 지역민의 유대감을 자연스럽게 형성하는 동시에 매출로도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다.

유벤투스의 스포츠 의료센터 ‘J-메디컬’ 홈페이지 화면. 선수뿐 아니라 일반 시민도 이용할 수 있는 지역 생활 인프라로 운영되고 있다.
© ‘J-메디컬’ 홈페이지

축구로 완성한 지역 브랜드,
비야레알

비야레알은 클럽 컬러로 인해 종종 비틀즈의 히트곡 ‘옐로우 서브마린(Yellow Submarine)’과 연결된다. 2017년 리노베이션 개장한 홈구장은 샛노란 색으로 장식되었다. 또한 홈구장 내 클럽 박물관은 잠수함을 모티브로 한 인테리어로 유명하다. 하지만 비야레알의 정체성은 단순한 색깔이나 별명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 배경에는 카스테욘 주를 대표하는 세라믹 산업과 함께 성장해 온 클럽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구단주 페르난도 로이그 회장은 2017년 재개장과 함께 홈경기장 이름을 ‘에스타디오 데 라 세라미카’로 바꿨다. ‘세라믹 경기장’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새 이름은 비야레알이 있는 카스테욘 주와 관련이 있다. 카스테욘 주의 세라믹 타일 산업은 유럽 시장을 거의 독점한다. 스페인 국내 타일 시장의 90%, 건축용 타일 시장의 81%를 차지한다. 카스테욘 주에서 세라믹 산업의 비중은 총생산의 28%에 달한다.

로이그 회장 역시 최대 세라믹 기업인 ‘파메사’의 오너다. 그러나 그는 경기장 명칭에 자신의 기업명을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카스테욘 주 세라믹 산업 전체를 상징하는 ‘세라믹 경기장’으로 지은 것이다.

비야레알의 스폰서들은 대부분 이 지역 세라믹 제조사들이다. 리노베이션에 사용된 각종 타일도 전부 지역 기업의 제품이다. 스타디움 투어 고객은 경기장을 둘러보면서 곳곳에 적용된 다양한 타일을 직접 손으로 만지면서 재질과 특성에 관한 상세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경기장 투어 자체가 카스테욘 지역 특산품 홍보관이자 인테리어 자재 샘플 전시관인 셈이다. 경기일에는 지역 소도시를 지정해 장터를 운영한다. 타 지역에서 온 원정 응원 팬들도 이곳에서 도자기 빚기, 타일 칠하기 등 세라믹 산업 현장을 체험할 수 있다. 인구가 5만 명에 불과한 비야레알은 독특한 이미지로 유럽 축구 팬들의 사랑을 받는데, 알고 보면 카스테욘 주 전체를 세상에 알리는 빌보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샛노란 색으로 장식된 비야레알의 홈구장, 에스타디오 데 라 세라미카 © 비야레알 홈페이지

#3 JAPAN :
카프 조시 열풍과 F빌리지 효과

일본 프로야구단의 도시 브랜딩

축구, 야구, 농구 등 전 세계 프로스포츠 팀은 연고지를 기반으로 성장한다. 여기에는 내 고향 팀에 대한 관심이 근간을 이룬다. 한 발 더 나아가 내가 정착한 도시에 위치한 팀에 대한 애착도 중요하다. 이런 요소들은 프로스포츠 팀을 통해 지역 정체성으로 승화되고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촉매제가 된다.

프로스포츠로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야구도 비슷한 궤적으로 발전했다. 전국 통일과 중앙집권 통치 시대를 16세기에서야 열었던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지역 정서가 강했다. 지금까지도 지역 축제(마츠리)와 지역 특산품이 일본 문화의 중심인 이유다. 이 같은 특징은 일본 최초의 프로 스포츠인 프로야구의 성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최근 지역 경제 활성화의 주역으로 프로야구 팀의 역할이 부각된 배경이었다.

한양대 스포츠산업과학부 교수.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에서 스포츠 담당 기자로 근무했으며, 영국 레스터 소재의 드몽포트대(DMU)에서 스포츠 문화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스포츠 문화사> <야구의 나라>가 있다.

오봉절과 고시엔,
야구장에서 발견한 ‘내 고향’

지역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경기 평균 관중 3만 명이 넘는 리그로 발전한 일본 프로야구는 1936년에 시작됐다. 하지만 일본 프로야구 이전에 야구와 지역 정체성을 연결시킨 최초의 야구 대회는 1915년에 시작된 여름철 ‘고시엔 야구 대회’였다.

이 대회는 8월에 펼쳐진다. 8월은 학생들의 여름 방학 시기와 겹쳐 선수들과 학생 응원단이 경기장을 찾기에 적합한 시기였다. 하지만 고시엔 대회의 개최 시기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 최대 명절로 불리는 오봉(お盆)절은 보통 양력 8월 15일이라 이를 전후해 4일간 연휴가 이어진다. 고향을 찾는 귀성 인파와 여행객이 대거 몰리는 시기다. 이때 펼쳐지는 고시엔 대회는 자연스레 ‘내 고향’과 연결됐다. 일본인들은 이 기간에 고향에서 친지들과 함께 라디오로 고시엔 대회 중계를 들었다. 당연히 내 고향 팀을 응원하는 문화도 싹텄다.

고향을 찾을 수 없던 이주민들은 고시엔 대회를 보며 향수를 달랬다. 같은 고향의 야구 팬을 경기장에서 만나 같은 팀을 응원하는 것도 이들이 오봉절 연휴를 보내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일본인에게 고시엔 대회는 단순한 야구 대회가 아니라 1년에 한 번 지역 주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축제인 마츠리와 같은 존재였다. 한 마디로 고시엔 대회는 지역민들에게 ‘야구 마츠리’나 다름 없었던 셈이다.

내 고향 팀을 응원하는 문화를 창조한 고시엔 대회는 이후 일본 대도시를 중심으로 생겨난 프로야구 팀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을 촉발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됐다.

2010년 고시엔 우승팀 오키나와 코난 고교의 개선 환영 인파. 고시엔은 지역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야구 마츠리’다. © 나무위키

히로시마를 전국에 알린
‘카프 조시’ 열풍

히로시마 카프의 홈구장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은 특별하다. 히로시마 카프의 홈 경기가 펼쳐질 때 큰 응원 함성이 발생하지만 인근 주택가에서 단 한 차례도 이와 관련한 민원 제기가 없었다. 그만큼 히로시마 시민들에게 카프는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히로시마는 일본의 2차 대전 패전 이후 이룩한 경제성장을 상징하는 도시다. 히로시마가 원자폭탄 투하로 폐허가 됐지만 이를 극복하고 일본의 주요 도시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히로시마에서 야구팀 카프는 지역 정체성 그 자체였다. 심지어 퍼시픽 리그가 카프의 재정난을 이유로 팀 해체를 요구하자 시민들은 야구팀 운영비 마련을 위해 모금 운동까지 했다. 이는 카프에 대한 히로시마 시민들의 충성심을 여실히 보여준 계기였다.

카프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황금기를 구가했지만 이후 성적과 관중이 동반 하락했다. 위기 의식을 느낀 카프는 2010년에 대전환을 모색했다. 대전환의 테마는 여성 팬덤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신칸센을 타고 히로시마로 Go!’라는 구호 아래 카프는 수도권 지역 여성 팬 대상으로 야구 관람 투어를 기획했다. 이들에게 히로시마 구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식음료도 제공했고 화장품 등을 기념품으로 내놓았다. 카프의 기획은 대성공이었다. 수도권에서 카프 여성 팬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3년 NHK 뉴스에서 ‘카프 조시(女子, 카프를 응원하는 여성 팬)’라는 신조어를 소개했을 정도였다.

카프 조시 열풍의 주요인은 카프가 일본 프로야구 팀 가운데 유일하게 치어리더 응원 대신 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응원 문화를 가진 팀이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카프가 모기업 체제가 아닌 사실상의 시민구단으로 운영되는 애틋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했다. 물론 테라스 석과 침대석까지 갖춘 카프 홈구장의 팬 친화적 경기장 설계도 한 몫을 톡톡히 했다.

이후 카프는 경기장을 찾는 방문객과 히로시마를 연결시키는 마케팅에 집중했다. 히로시마 관광명소 투어와 경기장 입장권을 함께 판매하는 패키지 상품이 나왔던 배경이다. 또한 카프 구장 내에 지역 상인들이 물건을 팔거나 홍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지역 특산품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히로시마 카프의 팬덤을 대표하는 ‘카프 조시’ © 나무위키

고시엔에서 시작된 고향 응원 문화는 지역 팬덤을 넘어
도시와 사람을 연결하는 힘이 되었다.

홋카이도 최고 상품이 된
닛폰햄 파이터스와 F빌리지

1974년 일본 프로야구에 뛰어 든 닛폰햄 파이터스는 명문 야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홈구장을 같이 썼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도쿄의 주인공은 요미우리였다. 닛폰햄은 연고지인 도쿄에서 팬덤을 키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1981년 닛폰햄은 요미우리와 일본시리즈에서 만났다. 하지만 팬들과 미디어의 관심은 모두 요미우리에 쏠려 있었다. 당시 일본시리즈 포스터에도 요미우리 선수들의 사진만 게재 됐을 정도다. 당시 일본시리즈에서도 닛폰햄은 요미우리에 고배를 마셨다.

도쿄에서 더부살이를 하던 닛폰햄은 2004년 연고지를 일본 최북단의 섬 홋카이도로 옮겼다. 닛폰햄은 이 때부터 지역 속으로 파고 들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첫 시작점은 팀 명칭 변경이었다. 새로 바뀐 팀 명에는 삿포로가 아니라 홋카이도가 포함됐다. 닛폰햄은 홋카이도의 중심 도시 삿포로에 홈구장이 있었지만 홋카이도 주민 전체를 팬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730 티켓’은 의미가 깊다. 730 티켓은 삿포로가 아닌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홋카이도 팬들을 유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7시 30분 이후에 입장할 수 있는 이 티켓은 지정 좌석은 없었지만 삿포로에서 다소 떨어진 직장에서 퇴근 후 경기장을 찾는 홋카이도 야구 팬에게는 인기가 높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닛폰햄은 홈구장의 큰 스크린을 통해 팀 마스코트가 홋카이도의 관광 명소를 여행하는 장면을 내보냈고 홋카이도 지역 거주자로 구성된 치어리딩 팀을 만들어 지역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연고지를 홋카이도로 이전한 지 3년 만에 흑자 경영에 성공한 닛폰햄은 일본을 대표하는 투수 다르빗슈 유와 오타니 쇼헤이의 대활약에 힘입어 2006년과 2016년에 일본 정상에 올랐다. 이를 계기로 닛폰햄은 홋카이도가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상품이 됐다.

에스콘 필드 내에 있는 F빌리지의 온천 & 사우나 시설 © 홋카이도 볼파크 홈페이지

닛폰햄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야구를 넘어 홋카이도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함께 할 수 있는 계획을 준비했다. 그 중심에는 홋카이도 기타히로시마 시에 위치한 신축 구장 에스콘 필드와 F빌리지가 존재했다.

온천욕을 하고 맥주를 마시면서 야구 경기를 관전할 수 있는 에스콘 필드는 곧바로 지역의 랜드마크가 됐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공간은 에스콘 필드 주변에 만들어진 F빌리지였다. F빌리지에서는 글램핑, 로드 바이크와 겨울철에는 눈썰매와 스노보드 등을 즐길 수 있어 지역민들은 물론이고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높다. 에스콘 필드 관중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찾는 F빌리지는 홋카이도 주민들의 여가생활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21세기 일본과 한국은 모두 지역 소멸로 인한 지역 경제 축소라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를 극복하는 데 스포츠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일본 프로야구 히로시마 카프가 만든 카프 조시 열풍이나 닛폰햄 파이터스의 F빌리지 효과는 의미가 있다.

지역 팬덤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외부 관광객을 유입시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방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내 고향 팀을 응원하는 문화를 배경으로 한 시즌 1,200만 명을 동원하는 국민 스포츠로 성장한 한국 프로야구의 미래 청사진으로 참고해 볼만한 대목이다.

에스콘 필드 내에 있는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 및 레스토랑 © 홋카이도 볼파크 홈페이지 에스콘 필드 내에 있는 액티비티 시설 © 홋카이도 볼파크 홈페이지